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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백이산 '나무 할아버지' 15만그루 키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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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남 순천시 외서면 신덕리 백이산(伯夷山) 숲속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는 고산출(高山出.65.사진)씨.

10여만그루의 나무를 40년 넘게 홀로 돌보고 있는 그에게는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사람' 이라는 뜻의 독림가(篤林家)라는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는 전남 광양의 한 산촌마을에서 태어났다. 한자 이름에 산(山)자가 세개나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고등학교(광양농고)는 학비를 내지않고 다녔다. 학교농장 나무를 돌보는 조건이었다.

전남대 농학과 재학 때부터 형님이 사준 벌거벗은 악산(惡山) 20여만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반 때인 1965년부터 3년간은 한해에 5만여그루씩 편백.삼나무 15만여그루를 백이산 자락에 심었다. 국가에서 무료로 묘목을 나눠줄 때였다.

그뒤 순천과 광주의 양송이공장.밀알회 사무국.신협 등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일요일과 휴가 때에는 어김없이 산으로 출근했다. 옹이가 생겨 목재에 상처(흠)가 나지 않도록 가지를 치고 금세 우거지는 잡목을 베며 덤불도 걷어냈다.

인부는 품삯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시로 닳아 떨어지는 등산화 값 대기가 바쁠 정도였다. 한달에 전기톱을 세개나 교체했다. 툭하면 산비탈에서 구르고, 나뭇가지에 눈.가슴 등을 찔려 다친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와 숲의 향기, 맑은 공기 속에서 땀을 식히며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습니다. "

정년퇴직하던 96년 거처를 아예 산으로 옮겼다. 부인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말 23평짜리 반(半)통나무집을 지었다.

30~40㎝에 불과하던 나무들이 높이 14m, 흉고 직경(가슴높이의 지름) 23~24㎝로 자랐다. 하지만 30년은 더 자라야 재목으로 쓸 수 있다. 손자 대에 가서야 돈이 되는 셈이다.

高씨는 "나무를 사랑하고 가꾸면서 살아온 인생에 후회는 없다" 며 "1남2녀의 자식들에게 나무는 몰라도 산은 절대 팔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다" 고 말했다.

순천=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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