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이달의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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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잡하고 번다한 세상일수록 한 편의 시가 절실해진다. 그 한 편의 시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시가 지닌 정서의 힘이 아니겠는가.

이 달에는 그런 세상에 밝혀든 황경태씨의 '홍시 하나'를 장원에 올린다. 이 작품은 늦가을 적요의 공간에 등불처럼 매달린 홍시 하나에서 무위의 상념을 풀어낸다. 읽기에 무리가 없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허심으로 대상에 다가가 절제된 감정을 옮겨 놓기 때문이다. '허울 다/떨궈내고' 익어가는 감은 이미 인간의 욕망이 닿지 못할 거리에 있다. 그렇게 다 떨궈낸 줄 알았던 허울을 '채워도/허기진 마음'이 또 쫓고 있으니, 아무래도 홍시는 인간이 사는 세상 쪽으로 떨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차상은 김명희씨의 '빈집'이다. 이농현상의 여파로 갈수록 늘어가는 빈집. '닫다 만 양철대문'이나 '시렁 밑 먹다 남은 시래기 몇 가지'가 우리네 농촌 현실의 우울한 풍경을 읽게 한다. 활력의 기운이 빠져나간 빈집은 이미 삶의 터전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정지된 시간 속의 허상일 뿐. 이런 작품은 자칫 넋두리로 빠질 우려가 있는데, 빈집의 한 수를 덜어낸 연유도 여기에 있다.

'숯불 바비큐 치킨'을 차하로 뽑으면서 잠시 망설인다. 까닭인즉 고만고만한 역량을 보여준 투고작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단수를 고르는 부담 때문이다. 앞의 두 편과 달리 도시적 감수성이 물씬한 이 작품은 의표를 찌르는 종장의 반전이 예사롭지 않다. 행간에 담긴 사유의 깊이가 잔류 감각을 낳는다.

홍경희.서정택.도애란.가재순.조성제.홍준경 제씨의 작품들도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나, 시상의 집중이나 함축 면에서 기대에 못미쳤다. 정신의 고삐를 바투 잡고 이왕에 잡은 붓끝을 더욱 곧추 세워 볼 일이다.

<심사위원:이우걸.박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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