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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 칼럼] 다시보는 신문윤리강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음주는 제45회 신문주간이다. 언론사에 대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의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고 언론개혁을 윽박지르는 분위기에서 신문주간을 맞는 심정은 어느 때보다 착잡하다.

*** 언론사끼리 공격.폭로전

3년 전 대통령 취임 후 첫 신문의 날 리셉션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에 대해 매우 감명깊은 연설을 했다.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말도 인용했다.

그 얼마 후 중앙 언론사의 논설.해설 책임자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당시 편집인협회 회장으로 답사를 해야 했던 필자는 제퍼슨은 대통령이 된 뒤 소신이 바뀌었지만 金대통령은 언론자유에 대한 그 신념이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폭로한 여권 내부 언론관련 보고서나 대통령의 연두회견과 그에 이은 국세청 및 공정위의 언론사 조사를 보면 金대통령도 제퍼슨의 전철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제퍼슨은 친구에게 사적으로 신문에 대한 경멸감을 표하는 데 그쳤으나 DJ는 행동으로 정면공격에 나선 인상이다.

대통령 연두회견 후 정부 영향 아래 있는 방송.신문과 이른바 진보적인 사회단체 및 매체들의 '언론개혁' 공세가 거세졌다. 구체적으론 여권의 언론문건이 '반여(反與)' 로 지목한 신문에 대한 공격과 폭로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우리 언론의 행태 및 역할에 대한 불만과 비판, 그리고 개혁의 필요에 대한 공감의 폭은 매우 넓다. 언론의 영향이 커지면서 틀린 보도, 부정확한 보도, 선정적인 보도, 불공정한 보도에 대한 불만이나 설익은 논평, 편향된 논평에 대한 비판을 더욱 많이 듣고 있다. 언론사 내부적으로도 6.29선언 이후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면서 제작에 대한 사주.경영층과 대광고주의 과도한 영향력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언론개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언론자유의 신장을 바탕으로 언론의 독립성.공정성.책임성을 제고하고 편집.제작의 자율성을 증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수단으로 일부에서 제기하는 신문 대주주 지분의 20~30%로 제한 주장과 신문시장 과점기준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보다 특별히 낮춰 규제하자는 주장은 위헌의 소지가 크거나 규제 완화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반(反) 시장적 발상이다. 편집권 독립문제는 언론계의 오래된 의제이나 편집권을 행사할 편집위원회에 노조대표를 50% 포함시켜 구성하도록 법제화하자는 주장은 지나치다.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편집의 자율성을 높이거나 보장하는 것은 선진 언론의 추세이고 꼭 필요한 일이긴 하나 개별 언론사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적합한 방식을 고안, 실천할 문제다. 비단 편집권 독립뿐 아니라 언론윤리의 제고 및 실천, 경영의 투명성 제고, 신문판매.광고시장의 공정경쟁 확보, 대광고주.정부 등 외부 영향력 차단 등 언론 개혁의 과제들은 언론사와 언론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토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정부가 강제력을 동원해 추진하면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침해된다. 언론개혁을 한다고 하다가 오히려 언론을 망칠 수 있다. 더구나 언론의 반발로 제대로 이뤄질 수도 없다.

*** 허위 고백이 된 실천요강

물론 언론이 그동안 자율적인 개혁, 자율규제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5년 전 언론자유가 신장돼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언론계가 합의해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새로 만들었으나 아직도 윤리강령에 대한 언론인들의 인식과 실천의지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만 제대로 준수돼도 신문의 부정확.선정성.불공정.사생활침해.부패에 대한 비판이 대폭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림대 유재천(劉載天)교수 같은 이는 이 점을 지적해 현재 한국언론의 직업윤리는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허위고백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강령과 요강의 준수를 자율 통제하는 한국신문윤리위의 제재도 너무 솜방망이인 데다 위원회의 경고를 공표해야 할 의무마저 무시하는 신문까지 있었다.

이런 신문윤리 실천수준으로는 언론사와 언론계의 자율개혁.자율규제 의사와 능력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타율의 개입으로부터 자율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 신문과 신문인들은 5년 전 신문의 날에 스스로 다시 만든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의 체질화에 나서야 한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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