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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돌아온 장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무법이 판치는 서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마을. 거친 모래바람을 뚫고 긴 코트를 걸친 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머리를 숙인 채 관을 질질 끌고 가는 그의 눈빛은 복수와 증오에 이글거린다. 관 속에는 기관총이 들어 있다. ' - 이탈리아 영화감독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1966년 제작한 '장고(Django)' 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부분 서부영화가 그렇듯 주인공(프랑코 네로)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뻔한 줄거리다.

우리가 흔히 '마카로니 웨스턴' 이라 부르는 이러한 이탈리아판 서부영화를 영화사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 이라 부른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원조는 이보다 2년 빠른 64년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만든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다.

이 영화와 후속편인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로 당시 무명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가 등장하는 정통 서부영화와 다르다. 우선 배경이 음산하다. 이야기 구성도 선악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주인공은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음모와 배신을 일삼는 탐욕의 화신이다.

그리고 아주 잔인하다. '황야의 무법자' 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의 사무라이 영화 '요진보(用心棒, 1961)' 를 그대로 본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무법자' 와 '장고' 로 대표되는 스파게티 웨스턴은 60~70년대 전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장고' 란 이름이 들어가는 것만 50여편이 만들어졌는데, 그중엔 '돌아온 장고' 도 있었다. 한때 실력자의 복귀를 빗대 이 말을 쓰기도 했었다.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복귀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말들이 많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누가 뭐래도 그가 실세(失勢)아닌 실세(實勢)라는 점이다. 민심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물러난 지 얼마 안되는 데다 재판부까지 '의심 간다' 고 판결한 그를 다시 불렀을까.

이 때문에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기왕 '돌아온 장고' 처럼 화려한 복귀를 했으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6개월여 야인 생활을 하면서 많이 듣고 느꼈을 거리의 민심을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전하는 진짜 실력자가 되길 국민은 바라고 있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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