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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클럽]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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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46년 한국군 창군 당시 임관자 1백10명 중 76명이 장군이 됐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이들이 한국 정부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이들에 대한 연구나 역사적 기록은 부족합니다. "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부비서장 스티븐 엠 탈프(45)중령.

79년 미군 사병으로 한국땅을 처음 밟은 뒤 중령이 되기까지 네차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11년 동안을 한국에서 보낸 탈프 중령은 절반쯤 한국 사람이 됐다.

그는 92년 하와이대에서 아시아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주한 미 대사관과 육군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판문점에서 통역자들을 감독하는 언어과장으로 일했을 정도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소주를 즐겨 마시고, 지리산을 좋아할 만큼 우리 문화에 동화됐다.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한국 사람' 이라고 서슴없이 강조하는 그는 부인이 한국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해박함이다. 뮤지컬 '명성황후' 를 보면서 사실(史實)과 다른 부분을 지적했고 행주산성을 찾았을 때는 안내문 중 잘못된 부분을 짚어냈을 정도다.

그는 최근 국군 창군 멤버인 이치업(李致業.80)장군의 자서전 『번개장군』(원민刊)을 영문판과 한글판으로 냈다.

99년 2월 주한 외국인 파티 석상에서 李장군을 만난 것이 책을 엮는 계기가 됐다.

"개인적으로 45~48년의 미군정 시절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자료가 별로 없더군요. 李장군이 그 시절에 대한 궁금증의 일부를 풀어줬습니다. "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초대 경호대장을 지내고 46년 창군 장교로 임관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李장군의 이야기에 매료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삶 자체가 한국의 건국과 발전과정입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삶을 정리한다면 한국 현대사 초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

북한과의 회담을 준비하고 군사협정 위반 사항을 통보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토요일을 출간작업에 투자했다. 녹음기를 곁에 놓고 李장군의 구술을 받아 그 내용을 몇번이나 반복해 들으면서 정리했다. 책에 실린 지도와 그래픽도 손수 그렸고, 교정까지 맡았다. 2년 넘게 매달려 지난달 책을 완성했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자신있게 내세우는 것은 부록에 실린 육군 창군 인명록.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실려있는지 꿰고 있었고, 창군 주역들의 군번까지 줄줄 외웠다.

"정일권(丁一權) 전 총리 알죠□ 그 분 장교 군번은 5번이에요.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해 현장에 같이 있었던 김계원(金桂元)씨는 35번,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李厚洛)씨는 79번…. 이 인명록에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망라돼 있어요. "

그는 "이 시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조그마한 도움이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글.사진〓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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