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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딛고 최연소 축구 국제심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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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망한 축구선수가 부상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재주라곤 공차기뿐. 누구라도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민후(25)씨는 달랐다. 선수로 못 이룬 꿈을 그라운드의 심판자로 펼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달 그 어렵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국제심판(주심) 자격을 따냈다.

이제 그는 8명뿐인 한국의 국제심판 중 한사람이다. 25세 이상이라야 국제심판 자격이 주어지니까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제심판이다. 그의 꿈은 "'외계인 주심' 피에루이지 콜리나(이탈리아)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위대한 심판이 되는 것"이다.

1998년 광양제철고를 졸업하고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할 때만 해도 그는 1m88cm의 키에 뛰어난 스피드의 촉망받는 신인이었다. 70년대 연세대 축구팀 수비수였던 아버지 이인한(49.사업)씨의 피를 이어받은 수비력은 특히 발군이었다. 그러난 입단하자마자 연습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모두 끊어지는 치명적 부상을 당했다. 두 차례 수술과 힘겨운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전남은 그를 서울시청으로 보냈다. 선수 생활과 학업(서울시립대)을 병행하던 2001년 그는 또다시 무릎을 다쳤다.

"선수로서의 미련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야 했지요. 그 때 심판이라는 새 목표가 눈에 들어온 건 행운이거나 운명이었어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의 3급.2급.1급 심판 자격증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지도자 자격증을 차례로 따냈다.

"그러고는 무작정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지요. 햄버거 하나 시켜먹지 못할 영어 실력이었지만 배우고 싶은 욕망에 죽어라 영어 공부에 매달렸어요. 내친김에 국제심판 자격도 따고 싶었고, 스포츠마케팅을 하면서 어린이 영어 축구교실을 운영하리라는 꿈도 있었거든요."

1년간의 랭귀지 코스를 마친 뒤 캘거리대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던 그는 지난해 집안 사정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했다. 그 사이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고, 어느 정도 몸도 회복됐다.

지난 4월 그는 FIFA 국제심판 자격 테스트에 응시했다. 서류심사와 면접, 그리고 프로축구 2군 경기에서의 실전평가 등을 거쳐 10명의 최종 심사 대상에 올랐다. 마지막 단계는 필기시험과 체력 테스트. 필기는 영어 작문도 있어 무척 까다로웠고, 체력 테스트에서는 12분 안에 3000m 이상을 뛰어야 했다.

하지만 이씨는 그 긴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 이제 FIFA나 AFC가 부르면 그라운드에 당당히 주심으로 서게 된다. "일본-중국전 같은 큰 경기를 맡고 싶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오르다 보면 월드컵 결승 주심도 볼 수 있겠지요."

경기가 없는 시간을 그는 서울 강남의 한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 지금은 경남 남해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 대학축구연맹전(10월 23일~11월 8일)의 심판으로 뛰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인 '어린이 영어 축구교실'도 조만간 열 계획이다. "올 겨울에는 캐나다로 건너가 계절학기를 수강해 학업도 마칠 참이에요." 그의 꿈이 착착 이뤄져가고 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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