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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 김길태 잡을 기회 두 번 더 놓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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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산 여중생 납치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피의자로 확인된 김길태(33)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사 부실로 두 차례나 더 놓친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과 김의 친구들에 따르면 김은 이모양 납치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 부산 덕포시장 부근 아버지(69) 집에 들러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에서 “나는 범인이 아닌데 오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김의 아버지 집에 잠복하고 있었다면 잡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김이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부모와 연락을 끊었다고 판단해 부모 집에 잠복하지 않았다.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지난달 28일 오후 10시쯤에도 김은 사상구 주례동 친구 이모(33)씨가 운영하는 한 주점에 나타났다. 김은 친구에게 “나는 범인이 아닌데 경찰이 나를 쫓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달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김이 사라진 뒤 이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5분 뒤 친구로부터 형사의 전화번호를 받은 김은 공중전화로 이 형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범인이 아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범인의 전화를 받고 20여 분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김은 이미 주변을 벗어난 뒤였다. 두 번째 검거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지방경찰청 류삼영 폭력계장은 “김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전화 받은 형사가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했으나 ‘나는 아니다’고 말한 뒤 재빨리 전화를 끊어 추적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3일에도 범행 현장 주변 집에 숨어 있는 김을 발견했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들이 8일 부산시 덕포동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한편 경찰은 김의 검거를 위해 전국 공조 수사에 나서는 하는 한편 14개 팀 75명으로 추적 검거팀을 구성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8일 오전 숨진 이양의 시신에서 채취·검출한 모발과 타액·질액 등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긴급 감정을 의뢰한 결과 질액에서 용의자 김과 유전자가 같은 DNA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이 상습 성범죄자였지만 경찰의 특별관리 대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일명 ‘전자발찌법’ 시행 이전에 김이 수감돼 만기 출소했기 때문에 이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법은 2008년 9월 시행돼 이후 발생한 범죄에만 적용되며 김은 2001년 성범죄를 저질렀고 지난해 6월 출소했다. 이재희 부산성폭력상담소장은 “성범죄자는 재범률이 특히 높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경찰이 재범 가능성이 큰 전과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성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큰 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김상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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