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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이란 급속 밀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러시아와 이란이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12일 모스크바에선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은 무기판매, 카스피해 유전공동개발, 이란에 대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지원 등을 망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이 이번에 합의한 협력의 내용이나 수준이 포괄적이어서 중동지역에서의 세력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관계 복원〓푸틴 대통령과 하타미 대통령은 12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대(對)이란 무기 판매 등을 집중 논의했다. 또 양국간 협력관계 기본 협정과 경제.안보협정 등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직후 "러시아와 이란의 공동협력관계 구축은 양국의 이익과 안보를 위한 것" 이라고 강조했고 하타미 대통령은 "우리가 논의한 모든 문제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세계 무대에서 제자리를 찾고 있다" 고 치켜세웠다.

양국의 이같은 급속한 관계개선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적의 적은 동지' 라는 아랍 격언에 가장 적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주창하는 푸틴 대통령과 미국의 중동 패권주의를 막아야 하는 이란이 공동의 적(미국)의 세력팽창을 막기 위해 뭉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최근 국제 고유가 상황에서 러시아가 석유대국인 이라크.이란과 동맹수준의 유대를 형성할 경우 국제 정치.경제에 대한 발언권이 강화될 수 있어 미국과 주변국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에 앞서 푸틴은 북한과 쿠바를 방문, 옛 동맹국과의 유대를 강화해 미국을 자극했다.

◇ 무기 거래, 미국 반발〓러시아는 이번에 이란에 3억달러 상당의 T-62와 T-72탱크 부품, SU-24, SU-25와 MiG-29기 등 전투기, 세 종류의 헬리콥터 등을 판매키로 했다.

이같은 규모의 재래식 무기가 이란에 공급되는 것은 1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95년에 체결된 미.러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미국은 95년 이란에 대한 재래식 무기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고 협정을 체결했으나 지난해 조지 W 부시가 선거전 도중 러시아를 비난하자 러시아가 2000년 12월 이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당시 러시아는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을 테헤란에 보내 관계개선에 합의했고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반대하는 부셰르 항구의 핵발전소 건설 재개도 약속해 미국을 자극했다.

미국은 12일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 성명에서 재래식 무기와 민감한 군사기술의 이란판매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러시아 외무부나 국방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오히려 이라크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라고 역공하고 있다.

◇ 카스피해 유전〓양국은 카스피해 유전개발 문제에서도 제3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이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란은 연안 5개국이 대륙붕을 20%씩 균등하게 분할하자고 제의한 반면 러시아는 이란에 13%를, 기타 국가에는 개별적 협상으로 소유권의 지분을 인정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카스피해는 러시아와 이란 외에 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등 5개국이 공유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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