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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밸리는 지금] "하드 포맷하라" 벌집 쑤신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벤처기업인 A사의 B사장은 9~10일 이틀간 컴퓨터를 통한 업무 처리를 거의 못했다.

지난 5일 시작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등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 단속을 피하기 위해 노트북의 하드디스크를 완전 포맷했기 때문이다. B사장은 "3천만원을 들여 정품 소프트웨어를 모두 구입했다" 면서 "복제 소프트웨어를 지우고 복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회사내 모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마저 포맷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단속으로 테헤란밸리의 벤처기업들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분위기다. 정부의 단속 강도가 예전과 달리 크게 강화된 데다 범위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5일 오후 화상채팅업체인 러브헌트에 단속반원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직원이 불과 35명인 중소규모의 회사에 10명의 단속반원이 찾아와 1시간30분간 샅샅이 컴퓨터를 검사했다. 러브헌트 관계자는 "단속이 시작되기 전에 3천만원어치의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깔아 회사는 적발되지 않았지만 직원이 개인용도로 갖고 있던 게임이 불법복제로 단속됐다" 고 말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의지를 체감한 벤처기업들은 많은 복제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는 직원에겐 당분간 재택 근무를 시키고, 일부 컴퓨터는 창고로 '대피' 시키는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다.

데이콤사이버패스의 유창완 사장은 "복제된 소프트웨어의 사용이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의 발전을 막고, 나아가 정보기술(IT)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벤처기업들이 순간의 이익에 집착해 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왔다" 며 "진작에 정품을 썼어야 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의 고소.고발을 받아 해당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뒤 단속에 나서야 하지만 영장없이 임의조사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불법을 단속하는 정부가 법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 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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