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서울 '관습'이 유지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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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던 날 나는 감사했다. 이 나라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가 살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고통 뒤에 나라를 찾았다. 배고픔과 가난을 겪은 후에 빈곤에서 탈피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희생된 아픔을 겪은 후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었다. 그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에 빠지고 있던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우리는 계속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관습'으로 '혁명'을 막아준 것

세계 180여개국 중 120개국이 선거를 하지만 이들을 모두 민주국가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전체주의가 나오고, 민중독재가 나온다. 포퓰리스트에, 선동가에 휘둘리면 민중은 어리석어진다. 올바른 판단을 못 한다. 그런 후 고통을 겪는다. 이것이 바로 선거의 역설이다. 투표로 뽑힌 대표일지라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법이다. 선거는 대표자에게 무한의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서, 임기 동안에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선거와 법치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헌재가 강조한 점은 관습헌법이었다.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국민이 당연한 것으로 여긴'서울=수도'는 헌법조항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외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요즘 세상에서 관습을 내세우다니…. 그러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빛나는 것이다. 힘없는 노인처럼 천시당해온 이 단어에 그런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우리는 변화와 개혁은 선이고, 전통과 관습은 마치 악인 것처럼 세뇌되어 왔다. 진보는 좋은 것이고 보수는 나쁜 것으로 아는 것과 똑같다. 그러나 관습과 전통이 오늘까지 왜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관습은 끝없는 수정과 개량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다. 뒤집어 엎는 것이 혁명이라면 개량을 통해 이어감이 관습이다. 수도 이전이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혁명'을 헌재의 '관습'이 막아 준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관들이 관습을 지켜주었다고 박수만 치면 될 일인가. '서울공화국 만세'만 부르면 끝날 일인가. 이 시점에서 수도 이전 문제가 왜 제기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같은 '서울 중심'현상이 수정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혁명의 발상이 다시 힘을 얻을 것이고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같은 돈을 주고 산 아파트가 서울이기 때문에 10년 후에 지방보다 3~4배 높아지는 현실에서 지방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지방의 상점들은 계속 문을 닫는데 서울만 북적거린다면 제대로 된 나라인가. 서울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전통이나 관습이 이어지려면 그 전통 때문에 가장 덕을 보는 사람들이 그 전통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 절제하는 마음이 있으면 관습은 현실에 맞게 개선된다. 그것이 개량이다. 서울=수도인 관습이 유지되려면 서울사람들의 절제가 필요하다. 반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개선방향에 협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서울 사람들이 국토의 균형발전에 가장 예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전통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를 통해 가장 덕을 보는 사람들이 책임의식과 절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전통은 유지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벌어서, 내 재산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나간다면, 없는 사람 가슴에 못을 박고 무시한다면, 자유와 시장경제는 혁명의 덫에 걸리고 만다. 역사는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부자들이 재산을 사회적으로 책임있게 사용하고 근신할 줄 알 때 천민자본주의는 개량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전통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 가장 덕 본 사람들이 절제해야

여당이 추진하는 보안법.신문법.사학법.과거청산법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이 법들은 우리의 헌법과 관습을 무시한 측면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통과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법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이 스스로 변화를 거부하면 관습은 이어질 수 없다. 그 다음에는 혁명이 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 법의 대상들은 그 법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것 못지 않게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전통과 관습을 지켜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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