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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아이도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수년 전 일본의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나 우리나라의 아담 등 '사이버 캐릭터' 의 등장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사이버 캐릭터' 의 등장은 하나의 조짐처럼 보였다. 인터넷 환경의 일상화.가상공간의 현실화가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것이라 여겨지면서 실재와 비(非)실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종국에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성급한 예언마저 등장했다.

이 예언의 배후에는 '사이버펑크의 아버지' 라 불리는 SF 작가 윌리엄 깁슨이 있다. 그는 인터넷과 가상공간의 개념이 구체화하기 훨씬 전인 1984년 이미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 소설 『뉴로맨서』에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가다.

그의 96년작 『아이도루』는 록밴드 리더와 사이버 여가수의 결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실제로 다테 교코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아이도루' 란 대중문화의 우상을 뜻하는 '아이돌(idol)' 의 일본식 발음이다.

인기 록밴드 로/레즈의 리더인 레즈가 사이버 아이돌 스타인 레이 토에이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레즈의 팬클럽에서 10대 소녀 치아를 파견한다.

한편 레즈의 경호원은 이 결혼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다고 의심을 품고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콜린 레이니를 고용한다. 레이니는 레즈가 왜 그런 이상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데이터를 조사하던 중 토에이와 마주친다.

『아이도루』의 무대는 월드 시티라 불리는 철저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연결돼 있어 네트워크 안으로 접속하면 모든 감각을 사용해 타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권력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들이 겪게 될 부조화와 부적응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뉴로맨서』가 그렇듯 여느 SF소설에 비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사전 지식을 갖고 읽으면 '접속분기점' 이니 '멀티 유저 도메인(MUD)' 이니 하는 용어들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깁슨의 예언과 우리의 현실 사이의 틈새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점이 깁슨 소설의 매력이다.

NOTE:윌리엄 깁슨의 소설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화로는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 그리고 '스트레인지 데이즈' 등을 꼽을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상이 디스토피아냐 유토피아냐. 정답은 아직 없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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