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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니오’ 단답형 해설가 만나면 등줄기에 식은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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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16면

KBS 강준형 캐스터(왼쪽)가 문용관 해설위원과 함께 4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캐피탈과 KEPCO45의 배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입니다. 지금부터 한국과 필리핀, 필리핀과 한국의 아세아선수권….”

국민을 울고 웃게 하는 스포츠 캐스터의 세계

1960년대다. 대한민국의 스포츠팬들은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었다. 필리핀을 비율빈으로 부르기도 하던 시절이다. 경기 장면을 보지는 못해도 청취자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중계는 박진감이 넘쳤고, 청취자는 머릿속에서 모든 정보를 재구성해 현장을 재현했다.

이때의 스타는 60년대 초기라면 김영기요, 후반이라면 신동파다. 이들의 활약을 전하는 아나운서(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도 스타였다. 임택근·이광재가 당대의 스타 아나운서다. 이들의 중계는 사실 전달을 넘어 감정이 실렸다. 얼핏 변사(辯士)를 연상시키는 중계다.

조민호

“아, 오캄포 파울입니다. 자유투를 던지겠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신동파군, 조국의 품에 또다시 두 점을 바칠 기회입니다. 슈웃! 네에~ 꼬리인~!”

라디오는 요즘도 경기를 중계한다. 그러나 스포츠팬 대부분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시청한다. 청취에서 시청으로 바뀐 것이다. 변사는 역할의 절반을 영상에 넘겨줬다.

그러나 절반은 여전히 ‘소리’가 맡고 있고, 소리의 지배자는 캐스터라고 불린다.
캐스터의 시대는 전문가의 시대다. “조국에 계신…” 같은 멘트는 없다. 경기 내용을 칼 같은 정확성으로 전달하고, 영상이 전하는 시각 정보의 의미를 풀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캐스터는 단지 소리뿐 아니라 중계 행위 전체를 장악하는 셈이다.

전에는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채용한 다음 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뉴스 및 진행자, 스포츠 중계의 업무를 나누어 맡겼다. 케이블 및 위성채널이 95년에 개국하면서 스포츠 전문채널이 24시간 국내외 스포츠를 중계하게 되었다. 스포츠전문채널에서는 중계가 주된 일이므로 캐스터 요원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을 둔다. 지원자도 대부분 캐스터가 되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캐스터가 되려는 사람들은 스포츠광이 아니면 안 된다. 필자도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교내 축구선수와 육상선수를 했다. 보고 하는 스포츠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필자에게 있어 스포츠는 곧 삶의 모든 것이다.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일단 캐스터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더 필요한 요소가 한 가지 있다. 곧 체력이다. 스포츠 중계는 2~3시간 쉬지 않고 말하는 작업이다. 운동 선수 못잖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품질 좋은 중계를 할 수 없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KBL) 총재가 쓴 자서전 『갈채와의 밀어』는 당시의 중계 상황을 잘 보여준다. 64년 9월 30일 일본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도쿄올림픽 예선전은 임택근·이광재·최계환·김주환 등 네 명의 아나운서가 중계했다. 당시 중계는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캐스터들은 건강과 체력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주위에서 “젊은 친구가 지나치구먼”하고 눈치를 줄 정도로 벌벌 떤다. 특히 감기 공포증은 대단하다. 감기에 걸리면 목을 상하기 쉽고, 그러면 중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수 개인사까지 챙겨 두기도
중계 방송은 현장 중계와 스튜디오 중계로 나뉜다. 과거에는 녹화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생중계된다. 스튜디오 중계라고 해도 마치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보면서 하듯이 선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자료 등 사전 준비는 더 철저해야 한다.

스포츠 중계에는 방송원고가 없다. 스포츠 경기는 같은 종목이라도 똑같은 상황이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경기가 최초이자 최후다. 언제 조우할지 모르는 적과의 결전에 대비하듯 중계를 앞둔 캐스터는 비장한 결의로 자료를 챙기고 상황을 숙지한다.

중계하는 종목의 경기 규칙을 훤히 알아야 함은 당연하다. 전문가 수준의 식견이 필요하다. 선수들의 특성과 장단점은 물론 팀의 히스토리, 기록, 심지어는 주요한 선수의 개인사까지 챙겨 둔다. 필요하면 선수 등 관계자를 인터뷰해 자료를 쌓아 둔다.
스포츠에는 시즌이 있다. 선수들의 시즌이 시작되면 캐스터의 시즌도 시작된다. 요즘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해외 경기가 많아 캐스터의 할 일이 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이크를 잡는다. 사정이 이러니 입이 아니라 체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중계방송은 보통 해설자와 함께한다. 캐스터와 해설자의 관계는 실과 바늘이다. 좋았던 시절의 송재익-신문선 콤비처럼 팬들의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다. 아내와 지내는 시간보다 해설자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캐스터나 해설자의 역할을 똑 부러지게 나눌 수는 없다. 캐스터는 해설자의 전문성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자는 경기 내용을 적절히 분석하면서 중계에 참여한다. 중계는 쉬운 것이 좋다. 두 사람의 호흡은 시청자와의 교감이기도 하므로.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 중계를 시청한 분들은 캐스터와 해설자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나타냈다. 우리 스포츠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듯 시청자의 수준도 높다. 시청자는 단순한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중계에 반응하고 그 품질을 평가한다. 방송의 노력이 필요하다.

캐스터에게 해설자는 멋진 동반자인 동시에 내부의 적일 수 있다. 타이밍이 아닌데 뛰어들어 정보 전달을 막거나 부적절한 멘트를 날리는 폭탄형 해설자가 가끔 있다. 이럴 땐 등허리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특히 종교적인 발언, 인신공격성 발언은 금기다.

그러나 정말 캐스터를 애먹이는 해설자는 따로 있다. 캐스터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단답형, 또는 OX형 해설자다. 이런 해설자들에게는 “지금 아주 상황이 심각하네요?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식으로 말을 유도하면 안 된다. 대개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 저도 그렇게 봅니다.”
 
중계석에 몸 날린 농구선수, 세상이 ‘캄캄’
주말에는 반드시 경기가 열리므로 캐스터에게 주말의 달콤한 휴식은 없다. 필자도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남편, 아빠 노릇 제대로 한 지 오래됐다. 주말여행? 나들이? 다 남의 일이다. 친구들과 편안히 소주 한잔 기울인 것이 언제던가.

요즘은 박지성과 이청용이 맹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 때문에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도 마이크를 잡는다. 밤샘은 예사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개 ‘야~ 스포츠 캐스터라는 직업이 아주 못할 일이구먼’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포츠 캐스터들에게는 일반인이 모르는 즐거움도 많이 있다. 팬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들과 현장에서 늘 함께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쏠쏠하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캐스터들에게는 삶의 희열일 것이다.

나름대로 특권(?)도 있다. 지난해 북한과의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을 때의 일이다. 필자는 중계 캐스터로서 일부 제한지역을 제외한 운동장 구석구석을 자유로이 다니며 선수들을 만나 적잖은 흥분을 맛보기도 했다.

아찔한 경험도 꽤 있다. 캐스터들은 방송 시작 4~5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방송을 위해 시간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한다. 한 번은 뜻밖의 교통 사고로 도로가 마비돼 차를 버리고 지나가는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불러타곤 운동장으로 달렸다.
중계 도중 배탈이 나면 지옥이 따로 없다. 인간의 한계가 어딘지를 시험하는 순간들이다. 그 경기의 클로징 멘트는 어느 때보다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장실에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그냥 문을 열고 내 몸을 화장실 안에 던져 넣었다.

중계 환경이 지금만큼 좋지 않았던 90년대에는 촌극도 많았다.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 중계를 위한 메모가 날아가거나 번져 낭패를 보는가 하면 중계석 근처까지 몰려든 팬들에게 에워싸여 경기시간 내내 일어서서 중계를 한 적이 있다.

농구 경기장에서는 거구의 선수들이 공을 살려내기 위해 중계석으로 몸을 날려 혼비백산한 일도 있다. 눈앞이 컴컴해져 ‘야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나중에 듣기로 필자는 한 손으로는 쓰러지는 선수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잡은 채 중계를 계속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계 중 마이크가 갑자기 꺼지는 경우, 모니터 전원이 꺼지는 경우도 있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캐스터와 해설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중계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경기 중계가 나중에 녹화 화면을 보면 꽤 괜찮은 경우가 있다. 무아의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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