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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사죄 없는 답방은 무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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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제침탈에 대해 우리는 늘 사죄(謝罪)를 요구했고 어떤 형태로든 지금도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시정을 요구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국제법 이전 민족간 문제

1백년 전 우리를 침탈한 사람들은 지금 일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할아버지와 그 윗대, 심지어는 고조부(高祖父)대까지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선조가 침탈할 때 지금 일본의 주역들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태어났다 해도 열살 이전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그들을 보고 우리는 왜 끊임없이 사죄를 요구하고 시정을 강요하는가. 이유는 오직 하나, 국제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다. 과거 그들 할아버지들이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했다는 것을 명심시킴으로써 미래사회의 평화와 공존을 다지려는 것이다.

사죄든 역사교과서 시정이든 모두 과거의 것이지만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미래에 있고 미래에 있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묻는 것이다. 사죄한다고 과거가 면죄되는 것이 아닌 한 오직 미래에 있어 다른 사고, 다른 행동만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후손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사죄며 그 시정에 항시 미흡했고 인색했다. 늘 정치적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서 한 것을 '우리가 왜' 라는 식이었다.

우리가 왜 김정일 위원장에게 6.25와 KAL기 폭파, 그리고 그 이후의 만행들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가. 요새 물의를 빚은 어느 여당 요직자의 말대로 6.25 때 그는 겨우 여덟살밖에 되지 않았고, KAL기 폭파를 지시했다는 물증도 없다. 오늘날 일본의 주역들처럼 그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왜 사죄를 요구하는가.

역시 그 여당 요직자의 말대로 그런 것은 국제법적 사안으로 먼저 다뤄야 할 일이고 사죄를 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일인가.

6.25는 일제침탈 36년에 못지 않은 역사의 붕괴며 민족적 대비극이다. 3백만명의 동족이 살상되고 1천만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냈다.

국토는 송두리째 파괴되고 재산은 모두 소실됐다. 더 비참한 것은 그 이후 반세기가 넘게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유례를 볼 수 없는 격렬한 분노와 증오, 첨예하기 그지없는 적개심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지역이 됐다는 것이고, 일제 36년과는 달리 그 전쟁을 체험하고 그 후의 만행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살아서 원한에 찬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사죄는 이런 그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죄는 참된 미래를 향한 의지며 화합의 미래를 위한 설계다.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의 반성, 가장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 그만이 평화와 공존을 향한 북쪽의 진정한 변화를 읽게 하고, 그만이 미래의 민족적 화해를 보장할 수 있다. 그 같은 반성, 그 같은 사죄가 없었기에 6.25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웅산 사건, KAL기 폭파 등 불량국가로 낙인되는 테러행위를 거리낌없이 자행했다.

사죄는 법 이전에 도덕이며 양심이며 양식이다. 6.25며 KAL기 폭파는 국제법적 사안 이전에 민족 내부 사안이다. 사죄의 거부만큼 반인륜적이며 반인간적인 것이 없다.

***평화.공존 위한 화해 필요

사죄 없는 답방은 할 필요도, 할 가치도 없다. 더구나 김정일 위원장은 6.25 때 여덟살의 개인 김정일이 아니라 전쟁책임과 권력장악을 모두 승계한 북쪽 최고의 권력자다. 지금 남쪽에서는 북쪽 이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권좌 이름을 더 대중 영합적으로 쓰고 있다. 아무도 김정일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이름 뒤에 기필코 '위원장' 이 붙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여섯살의 김정일이 아니라, "통일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 는 권력자 김정일이기 때문이다.

사죄 없는 답방은 정치인들끼리의 정치적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의 미래는 비평화적이고 비공존적으로 전락한다. 거기에는 인륜적 도덕성도 없고 민족적 정당성도 없다. 역사적으로는 우리의 정통성을 내팽개치는 행위다.

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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