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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환 러시아 환자, 서울서 수술 받고 1억9000만원 쓰고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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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되면서 고액 진료를 받는 외국인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몇 백만원대 쌍꺼풀 수술이나 피부관리를 받는 성형관광과 달리 암·심장병·뇌질환·허리병 등 중증 질환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진료비로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돈을 쓴다.

외국인 고액환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한국 의료의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실력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못지않지만 비용이 미국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이 한국은 1993~95년 41.2%에서 2003~2007년 57.1%로 크게 향상됐다. 미국 66.1%, 캐나다 60%에 육박하고 있고 위·간·자궁경부·대장암 등은 미국을 앞선다.

지난해 1~1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5만5000명으로 전년(1만5000명)보다 증가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 중 10%가 중증 질환 환자, 3~4%가 진료비가 1억원이 넘는 고액환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진흥원 장경원 글로벌헬스 비즈니스센터장은 “외국인 중증 환자들이 한국 병원들의 치료 실적이나 외국 논문 등을 찾아 싱가포르·인도·태국과 비교한 뒤 한국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에 반해 딸 취직을 부탁한 사람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내 여행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서울성모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필리핀 남자 환자(60)는 5600만원을 냈다. 필리핀에서 간호학과를 다니는 그의 딸(21)은 “미국 병원보다 한국이 더 좋다. 졸업 후 취직할 방법이 없느냐”고 문의했다.

건강검진 서비스가 빛을 발한 경우도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73)는 지난해 3월 신촌세브란스병원 건강검진에서 전립선암을 발견했다. 본국으로 돌아가 치료할 여러 병원을 알아본 뒤 여의치 않자 7월 세브란스를 찾아 전립선암 로봇수술과 척추 수술을 받았다. 7월 함께 입국한 부인 두 명은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는 모두 1억2000만원의 진료비를 썼다. 지난해 9월 서울아산병원에서 협심증 수술을 받은 우즈베키스탄의 50대 사업가도 비즈니스로 방한했다가 건강검진을 받고 병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그는 6500만원을 썼다.

전문병원에도 고액 환자가 잇따르고 있다. 척추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에는 지난해 12월 일본인 여자 환자(74)가 척추 뼈를 바로 잡는 두 종류의 수술을 받고 3600만원을 냈다. 그녀는 미국으로 가려고 알아보다 미국 의사가 한국을 추천해 수술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 병원에는 지난해 일본인 고액 환자가 33% 증가했다.

한국을 찾는 환자 중에는 외국 고위 인사가 더러 있다. 동북아시아의 유력 정치인과 주지사, 동남아시아의 장관과 다른 동남아 국가의 참모총장, 주한 대사 등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총리의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 경우도 있다.


신성식 정책사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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