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칫솔을 “치약” … 다문화가정 아동 40% 우리말 서툴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난 2일 주민이와 함께 안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은 리사씨는 주민이의 어휘력 발달이 또래보다 1년 이상 늦다는 것을 알았다. 주민이는 75점 이상이 정상으로 분류되는 검사에서 이해력 52점, 표현력 28점을 받았다. 리사씨는 지원센터에서 “주민이가 초등학교에 잘 다니기를 바랄 뿐”이라며 울먹였다. 혹시나 왕따가 될까, 바보로 불릴까 두렵기만 하다는 것이다.

주민이처럼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동 10명 중 4명이 또래보다 6개월 이상 언어 발달이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4일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가족부의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발달 지원사업 보고서’의 내용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5~11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통해 다문화가정 아동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언어 발달 교육을 실시했다.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엄마가 외국인이다 보니 아이에게 언어 자극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구대 언어치료학과 김화수 교수는 “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아동을 조사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다”면서도 “2009년 현재 10만 명쯤 되는 다문화가정 아동 중 상당수가 언어 발달 지연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전라북도 정읍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현지(8·오른쪽)양이 최미리(32) 언어지도사와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있다. 언어 발달이 뒤처진 현지양은 지난해 9월부터 이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언어 발달 지연의 정도가 심하다. [정읍=프리랜서 오종찬]

초등학교 2학년인 김현지(8·가명)양은 언어 발달이 늦어지면서 인지 발달까지 뒤처진 경우다. 현지의 엄마는 일본인이고, 현지의 IQ는 77이다. 또래 아이들은 90~100 정도 된다고 한다. 엄마 다무라 노리카(42·가명)씨는 “읽기와 쓰기는 못했지만 말만큼은 또박또박 잘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다무라씨는 의사로부터 “한국말을 많이 해줄 가족이 주변에 없어 언어 지능이 발달하지 못했고, 그래서 IQ가 낮은 것 같다”는 설명을 들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다무라씨는 현지를 낳으면서 분가했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다무라씨는 현지에게 하루 종일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줬다. 비행기를 ‘비앵기’로 발음하는 자신보다 비디오 테이프가 더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지는 그후 엄마와 함께 놀지 않고 비디오와 컴퓨터에 집착했다. 현지의 언어 발달을 돕고 있는 언어지도사 최미리(32)씨는 “외국인 부모들은 ‘내 아이는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동 10명 중 4명꼴 언어 발달 늦어=본지가 입수한 보고서는 언어 발달 교육을 받은 2400여 명 중 900여 명에 대해 정밀 검사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 912명 중 언어 발달 상태가 지연·지체 또는 장애로 나타난 아동은 349명(38.2%)이었다. 언어 발달 지연을 겪고 있는 아동의 절반가량이 또래와 1년 이상 격차가 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언어 발달 지연의 정도가 심했다. 조사 대상 어린이 중 2세 아동은 80%가 정상 범위에 속했지만, 6세 어린이는 30%대로 떨어졌다. 동신대 언어치료학과 김성수(43) 교수는 “학교에서 습득해야 할 학습과 사회성은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며 “따라서 취학 전에 언어 발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이후 국제 결혼은 매년 국내 결혼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정선 의원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언어 습득을 위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글=송지혜·정선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