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솔한 對話여야 감동을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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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를 내일 다시 한다. 집권 후 네번째이자 지난해 2월 이후 1년여 만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金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국민의 불만과 바람이 가감없이 개진되고, 국정 최고 책임자의 성의 있는 설명으로 궁금증도 해소되는 쌍방향 의사소통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앞서 열린 세차례의 '대화' 는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이번도 행사를 위한 행사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회의가 없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게 작위적인 연출이다.

그동안 어린이에서부터 각계 각층의 인사까지 두루 동원되기는 했으나 인물 선정 등 모든 진행과정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줬다. 질문과 답변도 사전 각본에 따라 이뤄진다는 인상이 확연했다.

따가운 비판이나 껄끄러운 내용, 정작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으니 답답했다. 대통령의 답변도 준비된 원고를 읽듯 매끄러워 진짜 고민한다는 흔적을 읽을 수 없었다. 대통령과 보통 사람들간의 진솔한 대화를 기대했던 일반 국민은 실망했고 심지어 '짜고 치는 판' 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갖는 막중함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연출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시시콜콜한 대목까지 앞뒤 입을 맞추는 것은 '대화'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고, 생동감 있는 TV 생중계의 맛이 떨어진다. 설득력도 반감된다. '대화' 로 포장된 대통령의 또 다른 홍보 무대와 다름없다. 그런 식이라면 공중파 TV3사의 공동 중계는 정말 낭비다.

金대통령의 말솜씨는 정평이 나있다. 대중 연설은 물론 토론에도 능란하다. 사전 각본 없이 진행한다면 오히려 金대통령 특유의 진솔한 속내와 말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고 모르는 일도 있는 게 당연하다. 실수도 할 줄 아는 인간적인 모습이야말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각본 없는 대화 정치는 품격 있는 정치쇼로 발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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