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드컵, 역대 감독에게 듣는다 <2> 이회택, 1990 이탈리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120% 실력을 발휘해도 될까 말까인데, 컨디션이 최악이었으니….”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을 지휘한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당시에는 A매치 상대를 구하지 못해 클럽팀과 평가전을 치렀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연방 같은 말을 되뇌었다.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3승2무, 무패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이회택 당시 대표팀 감독은 스타 출신의 명장으로 칭송받았다.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진출 소식은 축구팬들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본선 3전 전패, 1득점 6실점. 86년 월드컵 무대에 재등장한 이래 한국이 기록한 본선 최악의 성적이었다.

스페인전에서 35m 프리킥으로 골을 터뜨린 황보관. [중앙포토]

◆일주일 전 출국=대표팀은 90년 6월 5일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벨기에와의 첫 경기를 일주일 앞두고였다. 이 부회장은 “일주일이면 시차 적응이 될 줄 알았다. 잔디, 현지 분위기 같은 건 생각도 안 할 때였다. 더 일찍 나갈 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처럼 정보 수집이 쉽지 않아 상대국 분석도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이번 대표팀은 남아공과 시차가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고지대 적응 훈련을 한 뒤 남아공에 입성하는데 아주 좋은 일정인 것 같다. 또 상대국 분석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차 적응에 애를 먹으며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대표팀은 벨기에와 스페인·우루과이에 차례로 무너졌다. 팬들의 비난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각광받았던 김주성에게 쏠렸다. 신문 독자투고란에는 ‘긴 머리를 당장 자르라’는 분노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함량 미달 평가전=89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대표팀은 14번의 평가전을 치렀다. 그중 A매치는 단 네 번. 그나마도 이집트를 제외하면 노르웨이·몰타·이라크 등 월드컵 본선과는 상관 없는 나라들이었다. 이 부회장은 “돈을 싸짊어지고 가도 한국은 상대를 안 해 주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이 높아졌다. 월드컵 본선 직전 세계랭킹 1위 스페인과 평가전을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한국이 상대한 팀은 대표팀이 아닌 클럽팀이었다. 대표팀은 90년 5월 9일 싱가포르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과 평가전을 치렀다. 아스널은 막 시즌을 마친 팀이었다. 아스널 관계자는 경기 전 “우리는 관광 겸 비즈니스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평가전이라면 일정이나 상대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 경기는 다국적 석유기업이 후원하는 대회였다. 항공료에 출전료까지 받을 수 있어 재정이 풍족하지 못했던 협회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다.

◆홍명보의 등장=모든 게 실패는 아니었다. 이탈리아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는 향후 10여 년간 대표팀을 짊어질 인재를 발굴했다. 리베로 홍명보의 등장이었다. 이회택 감독은 90년 1월 대표팀을 개편하며 고려대 4학년 홍명보를 발탁했다. 스위퍼 조민국의 부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은 “새파란 대학생을 뽑으니까 기술위원회 어른들로부터 꾸지람도 들었다. 홍명보는 경험은 없지만 머리가 비상한 선수였다. 기본기도 좋았다. 주저 없이 선발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이 끝나자 “최순호와 홍명보만 보였다”는 제목이 국내 신문을 장식했다.

이 부회장은 “허정무팀에도 김보경이나 이승렬 등 머리가 좋고 재능이 빛나는 어린 선수가 많다. 하지만 홍명보가 조민국의 부상을 틈타 스타가 됐듯이 실력에 운이 좀 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치혁 기자

월드컵, 역대 감독에게 듣는다 <1> 김정남, 1986 멕시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