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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입학식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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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코흘리개들이 하얀 손수건을 달고 삐뚤빼뚤 죽 벌여 늘어선 예전의 입학식 풍경. 요즘은 입학식 풍경이 많이 바뀐 모양이다. 선배들이 연주회를 열어주고, 아이들에게 금관을 씌워주거나, 발을 씻겨주는 입학식도 있었다고 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마음이 마치 저울질하는 천칭 같을 아이들을 배려한 특별한 입학식 소식을 듣자니 내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강원도 산골의 한 초등학교 입학식 소식도 들었다. 단 한 명의 입학생을 받은 ‘나 홀로’ 입학식이었다는데 아이가 너무 긴장을 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적엔 왼손을 왼쪽 가슴에 척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고 나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무실에 전화를 했다. “올해 입학생은 좀 늘었나요?” “네 명입니다.” 전교생이 총 서른 한 명이라고 했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입학생 수가 마흔 한 명이었는데 이제 고작 네 명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농촌에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뚝 끊어졌다는 말에 더욱 실감이 갔다.

나는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동무들을 떠올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하교할 때 우리는 제비처럼 재재거리며 무슨 말을 주고받았던가. 길가에는 들꽃이 피어 있었고, 뱀이 산길을 횡단하며 앞서 지나갔고, 우리는 가던 걸음을 멈추어 뱀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다시 그 길을 걸어갔고, 어른을 만나면 몸을 반절을 접어 깊게 인사를 드렸었지. 그런 날들이 쌓여 키가 크고 몸집이 불어났다. 어른들의 간섭은 많지 않았다. 물론 어른들은 논밭에서 일하느라 너무도 바빴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불안과 상처를 혼자서 이겨낼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고, 꿈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면서.

최승호 시인이 쓴 ‘벌목’이라는 우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아름드리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던 때까치가 먹이를 물고 날아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둥지도, 새끼도, 숲도 없었고 녹색 지구덩어리도 없었다. ‘아니 지구가 어디로 갔지?’ 놀란 나머지 때까치의 부리에서 물고 온 애벌레가 떨어졌다.”

갓 입학한 아이들의 낯선 등교를 위해 학교까지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들을 아침에 보게 된다. 아이들은 눈에 익지 않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점차 적응을 하고, 동무를 사귀고, 스스로 꿈을 키워 나갈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둥지’와 ‘녹색 지구덩어리’가 없어지지 않도록 아이들의 꿈을 벌목하지 않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시끌시끌한 1학년 교실에 한 번 들르고 싶다. 햇살이 눈부신 창가에 화분이 놓여 있고, 풍금이 울리던 그 교실을.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