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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농·수협 조합장은 돈 봉투로 뽑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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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농협과 수협 조합장 선거가 ‘비리 백화점’이다. 돈 봉투는 기본이고, 상품권에 굴비·한우세트가 오간다. 조합의 간부직이나 자녀의 취업까지 약속한다. 올 들어 2월까지 전국 367개 농협과 21개 수협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그런데 벌써 10명이 구속되고 162명이 입건됐다는 대검찰청 집계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농어민의 ‘머슴’을 뽑는 풀뿌리 선거가 뿌리부터 썩은 셈이다.

조합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띠는 것은 무엇보다 조합장의 막대한 권한과 혜택 때문이다. 지역과 업종에 따라 5000만원 안팎의 연봉과 성과급, 판공비·유류지원비·활동비 등을 합치면 1억원대다. 이사직 선임과 직원 채용도 가능하다. 조합에 따라서는 운용기금이 수천억원에서 2조원을 넘나든다. 어지간한 자치단체장 못지않은 ‘기관장’ 자리다.

반면에 조합원 수는 적다. 이번에 조합원의 3분의 2가 경찰에 불려간 전남 신안군 임자 농협에서도 보듯 5명이 출마해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 당선자와 최하위의 표차가 100여 표에 불과한 ‘동네 선거’다. 그러다 보니 이런 연줄, 저런 면식(面識)을 통해 매표 행위가 횡행하는 것이다.

해결책이 달리 없다. 조합장의 권한과 혜택을 조정하고, 본연의 심부름꾼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영농기술과 신품종을 보급하고, 농산물 생산·유통을 지원하는 것이 ‘머슴’ 조합장이 할 일이다. 현재 ‘상전’ 농민은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농약값·비료값 건지기 힘들다고 한숨 짓는다. 어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이들을 금품으로 유혹해 자리를 꿰차고는 본전을 뽑으려 농약이나 유류를 빼돌려 구속되는 게 비리 조합장들의 현주소다. 그야말로 주종(主從)이 전도(顚倒)된 꼴이다.

선거 비리의 썩은 뿌리는 뽑고 부패한 물고기는 집어내야 한다. 그것이 튼실하고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는 방법이다. 올해는 지방선거와도 겹쳤다. 풀뿌리 선거라는 점에서 똑같다. 앞으로도 94개 농협과 16개 수협 선거가 남았다. 풍요로운 농어촌을 위해 건강한 풀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투명한 선거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