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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춘수 '西風賦'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왼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 김춘수(1922~ ) '西風賦'

문학을 한답시고 시건방을 떨고, 까불 때 나는 이 시인의 모든 시와 산문집을 다 사 읽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모양을 그려 놓은 것 같은 이 시인의 시들은, 그러나 내게 설명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무의미함 속에 숨은 그의 '시적 의미' 는 시를 공부하는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꽃인 듯 이야기인 듯 그런 얼굴을 하고 말이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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