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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붕.괴 '본고장'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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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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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붕괴'. 학생과 교사의 신뢰가 약해지면서 수업이 제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주로 초등학교에서 쓰이며 일본이 원조다.

그러나 학급 붕괴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학급 붕괴 현상이 일본보다 더 심하다는 연구가 처음 나왔다. 학급 붕괴를 가리키는 지표를 조사해 보니 정작 심각한 것은 우리였다.

?학교가 싫다=서울 중심부의 한 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 점심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 아이가 "수업시간에 쪽지를 주고받거나 교과서에 만화를 그리는 아이가 많아요"라고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학생이 "국어는 과외에서 이미 다 배워 학교 공부는 재미없어요"라고 말하자 "영어도 마찬가지"라는 대답이 나온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엔 사교육이 기다린다.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고 학원을 마친 뒤 집에 들어가면 밤 11시가 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우리 초등학생들은 사교육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 수업시간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 초등학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몇년 전부터인가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모습이 사라졌다"며 "대부분의 학생.학부모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학생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는 "업무가 너무 많아 주로 점심 때나 청소시간에 잠깐 말을 걸 뿐 따로 불러 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일본이 차라리 낫다=한국의 초등학교가 일본보다 ▶수업분위기가 나쁘고▶교사와 학생의 대화가 부족하며▶학교생활.수업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가 낮은 것이 처음 확인됐다. 한국교육개발원 정광희 연구위원팀이 지난해 5월 서울 15개 초등학교 5학년 학생 1035명을 조사해 도쿄(東京) 9개 초등학교 483명에 대한 일본 측 조사와 비교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학교가 매우 즐겁다'는 비율은 일본의 초등학생이 50.7%인 반면 한국은 34.5%에 불과했다.

매일매일의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학생도 많았다.'같은 반에 남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는 응답의 경우 일본은 46.4%인 데 비해 한국은 68.5%나 됐다. 또 '우리 반 아이들은 서로 사이가 매우 좋다'는 비율도 일본이 31.1%, 한국이 22.7%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거르고 학교에 갈 때가 있다'는 답은 한국이 무려 42.1%에 달했다. 일본은 26.5%였다. 집에서 '공부해라'라는 말도 우리 학생들이 더 많이 들었다. 이 밖에 한.일 초등학생의 60% 이상이 최근 '안절부절못하거나 초조함' 과 피로를 느꼈지만 그 비율은 한국이 더 높았다.

정 위원은 "일본 학자들은 한국이 일본에 비해 교사에 대한 존경심 등 유교 전통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조사 결과가 거꾸로 나와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일상생활▶수업 분위기▶교사와의 관계▶가정생활 등 7개 범주에서 36개 문항에 걸쳐 이뤄졌다. 일본에서 학급 붕괴 현상을 진단할 때 자주 쓰는 지표들이다.

이승녕.한애란 기자

■ 등교 전 아침은 꼭 !

-밥이 안되면 대용식이라도=선식.미숫가루 등 대용식이라도 먹는 게 아예 거르는 것보다 낫다.

-근본적인 생활습관을 고쳐라=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일을 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이유로 집에 늦게 들어오고 늦게 일어나 서둘러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생활리듬을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에서 아침 급식을 한다면=가능하다면 학교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아침 도시락을 싸와 식사할 시간.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아침 거르면 어떤 문제 있나

-소아 비만과 직접 연결=아침 식사를 거르면 아무래도 점심과 저녁을 많이 먹게 된다. 또 많이 먹을 뿐 아니라 급하게 먹게 되는 등 통제할 수 없다. 평생 가는 식사 습관을 잘못 들일 위험이 있다.

-음식의 질 하락=집에서 아침을 거르고 밖에서 먹게 되면 아무래도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찾게 된다. 음식의 영양과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신경질적 성격=식사를 거르면 저혈당 증상이 나탄다. 저혈당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심리상태를 만든다.

-집중력 저하=아침을 거르면 제대로 먹은 사람보다 학습장애가 있거나 주의력이 산만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도움말 :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성은주 교수

*** "우리 사교육 현실 보고 일본 학자들 깜짝 놀라"

◆ 한국교육개발원 정광희 연구위원

한국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따져보면 학급 붕괴가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이 사교육에 대한 과잉 의존을 낳고, 여기에 지친 아이들은 정작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된다.

이번 조사에서 국내 연구팀은 일본에선 하지 않은 설문을 추가했다. 방과 후 생활, 특히 학원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조사 결과 '학원 또는 가정교사에게 배운다'는 응답이 89.3%나 됐다. 다니는 학원 수도 매주 5개 이상이 13%, 3~4개가 27%나 됐다.

이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일본 국립교육정책연구소가 2001년 도쿄의 초등학생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49.2%가 우리의 보습학원에 해당하는 '주쿠(塾)'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 초등학생들이 매주 여러 곳의 학원을 다니고, 일부는 자정이 돼서야 집에 간다고 하면 일본 학자들은 "교육이 아니라 학대"라며 깜짝 놀란다. 아침을 거르는 아이가 많은 것도 밤 늦게 학원을 다니는 등 과중한 생활과 공부에 대한 중압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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