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하늘서 내려온 거대 목걸이 패션 매장에 빛을 뿌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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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목걸이 옆에 선 작가는 “육감적이면서도 숭고한 여신의 몸 같지 않냐”며 즐거워했다. 4층 높이 천정에 매달린 젖빛 구슬들은 밤이 되자 제각기 빛을 받아 색색으로 반짝였다.

서울 청담동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숍(boontheshop)’ 중정(中庭)에 ‘아이보리 더블 네크리스’를 설치한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46·사진)은 “높은 수준의 패션이 교유(交遊)되는 곳에 내 작품을 선물처럼 끼워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샤넬’의 홍콩과 상하이 매장에 설치물 작업을 한 그는 세 도시 세 공간을 비교해달라는 주문에 이마를 문지르며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흰 벽면이 둘러싸 질식할 것 같은 미술관이나 화랑보다 이런 자유로운 공간을 더 좋아하죠. 사람들이 드나들며 눈으로 많이 만져줬으면 좋겠어요. 이 네모난 마당은 보석상자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내년 3월부터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이어 5개국 순회전이 잡혀있는 오토니엘은 DNA의 나선구조같이 유기적이면서도 증식하는 세포처럼 생명력 넘치는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상처와 치유의 의미를 지닌 붉은 목걸이를 늘 하고 다니는 그는 “내게 구슬은 좋건 나쁘건 인생의 한 구비를 도는 흉터, 기억하고픈 슬픔과 아픔, 회한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매듭 만드는 과정을 꼼꼼하게 뜯어봤어요. 제 다음 작품에 매듭이 준 영감이 형상화될 겁니다. 비단과 한지 등 재료를 양껏 사고 나니 배고픈지도 모르겠어요.”

국내 화랑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돌고 도는 목걸이처럼 곧 다시 만납시다”라며 눈을 찡긋했다.

글·사진=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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