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운용 ‘확장’과 ‘적극’의 차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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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확장적’ vs ‘적극적’=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임시국회 때 기획재정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당분간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를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에 정부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등 당초의 지출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금융정책도 당분간 현재의 확장 기조를 유지한다는 표현도 있었다.

‘확장적(expansionary)’ 거시정책이란 정부가 경기를 띄우는 방향으로 재정·통화정책을 쓴다는 의미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신속하게 302조원의 재정을 쏟아부었고, 금리도 대폭 끌어내렸다. 여기다 소득세 인하와 유가환급금 지급,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지갑을 불려줬다. 이런 선제적인 정책 대응 덕분에 선진국보다 경기 회복이 빠르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정부의 거시정책 기조에서 ‘확장적’이란 표현 대신 ‘적극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살아나도록 거시정책을 운용하면서도 슬슬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공식적으로 ‘확장적’이라는 표현을 공식자료에서 다른 말로 대체할지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 재정이든 금리든 거시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 직후였던 지난해와 회복세가 감지되는 올해는 거시경제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근엔 재정 건전성이 부쩍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외부 인터뷰나 강연을 할 때 ‘확장적’이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것저것 그러모아서 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는 “대외 경제환경이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민간 고용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환경이 달라지는 이행기인 만큼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규모 개방경제=지난달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를 알리는 공식자료에서 정부는 한국 경제를 ‘중규모 개방경제’라고 표현했다. 대외의존도가 92.3%(2008년)에 달할 정도로 높은 만큼 국제사회에서 무역자유화 논의를 선도해 나가고, 작은 이익을 앞세운 보호장벽이 통상 마찰로 비화하지 않도록 유의하자는 장관 발언을 정리하면서 나온 말이다.

통상적으로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 불린다. 재정부 관계자는 “세계 15위권 경제인 한국의 위상을 감안했고,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의제에 우리 생각을 반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런 표현을 써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금융안정위원회(FSB)에 가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중규모 개방경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경제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소규모 개방경제와 대규모 개방경제 두 가지뿐이다. 여기서 소규모와 대규모는 나라경제의 크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변수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없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국제시장에 설정된 가격 변수를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미국 같은 큰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개별 국가 미국 경제의 좋고 나쁨에 따라 세계 경제의 향방이 달라지지만 한국은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뿐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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