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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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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강정인 외 지음,책세상,274쪽,1만5000원

“영어회화의 세계에서 묘사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인 영어 선생들이 희구하는 바의 미국, 그들이 향수 속에서 그려보는 미국인 것이다. 영어회화의 세계에서는 오늘날 이 나라에 왜 환멸감과 무기력함이 그토록 만연해 있는지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원어민의 생각으로 원어민의 세계를’.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영어학원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얼마나 ‘순수’하고 지당한 명제인가. ‘세계적 경쟁력’이 일상 언어로 통용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보편적 합리주의가 그 어떤 것보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현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프로젝트를 선언하기 훨씬 전에,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가 제출되기 훨씬 전에 이미 서구적 모델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이라는 허구적인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 건강함이 있으려면 질병이 있어야 하며 밝음은 어둠을 필요로 했다.

그런 점에서 이는 지적 헤게모니를 위한 체계이기도 하다. 동양은 ‘여성=독재=비이성=야만=비위생’으로, 서양은 이와 대조적으로 ‘남성=민주=이성=문명=위생’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서양의 정체성을 세우고 동양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기에 동양은 합리적 이성을 통해 문명화되어야 할 대상이며 지배와 보호를 통해 이성적 ‘인간’으로 거듭나야 할 원시적‘자연’일 뿐이었다.

문제는 서구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인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좀더 좁혀 보면 우리에게 존재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는 이미 1890년대 개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사회진화론’이나 ‘문명화론’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개화’된 서양이 ‘미개’한 동양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기도 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개화적 지식인이 ‘개화된’ 일본으로부터 ‘미개한’ 조선의 독립을 포기하고 ‘선 실력양성 후 독립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점이었다. 서구적 근대화 모델은 과학적·진취적·문명적 모델이었고 우리의 정신과 문화는 비과학적·보수적·야만적인 관습일 뿐이기에 서구의 그것은 계몽과 발전을 위한 유일한 체계로 이를 통해 당당한 문명국으로 서둘러 넘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강정인 서강대교수가 중심이 되어 집필한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딱딱한 역사서술을 넘어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일상 속에서 우리 안에 내면화된 서구중심주의를 드러냄으로써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마주치게 하고 친일파 청산 문제에 가려져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다른 한 단면을 직시하게 한다. 더욱 중요한 ‘서기 2004년 동경 127도’라는 시공간적 개념의 중심성에서 광고나 영어회화, 더 나아가 하루의 일상 속에서 느끼는 서구중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던져놓지만 그 속에는 서구를 중심으로 설정한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것 역시도 놓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정상인과 비정상인, 서울과 지방이라는 이분법도 이런 중심주의와 궤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진정 던지고 싶은 문제는 또 다른 한편의 배타적 민족주의다. 최근의 반미·반일 감정과 더불어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감정적 민족주의 등, 이분법적인 배타성은 우리(선)와 저들(악)로 일체화하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조리들을 감추고 너희 안에 존재한 참된 것들을 지워버리는 또다른 제국주의적 세계관일 뿐이다.

이에 강 교수는 ‘지구적 의식’의 출현 가능성에 주목하고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이자 보편적 문화상으로 좀더 평등한 다중심적 다문화주의를 제안하며 문명적 갈등을 최소화할 교차문화적 혹은 문명적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구적 시민문화의 창출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는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소중하고 진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이윤호(문화평론가)

***아름다운 몸짓이 있기까지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장광열 지음, 동아일보사, 272쪽, 1만1000원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 벤츠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시민들이 자부심에 넘쳐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다. 강수진(37)씨는 이 발레단에 1986년 동양인으로 처음이자 21세 최연소로 입단하는 기록을 세웠고 지금은 주역 무용수로 뛰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 발레리나다. 평생 단 한 번도 발레를 떠난 삶을 생각하지 않았을만큼 발레에 미쳐 살았던 그의 발은 혹독한 연습으로 울퉁불퉁하지만 무대 위에 선 그의 자태는 선녀처럼 아름답다.

지난 20여 년 춤 전문기자이자 평론가로 강씨를 취재해온 장광열씨는 그 비결을 “화려함 뒤에 숨은 남모르는 고통, 처절한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데”있다고 분석한다. 25·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내한 공연에서 그의 춤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의 절절한 사연

세상 속으로
이준희 지음, 문이당, 236쪽, 8800원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골목길과 시골 장터, 병원, 산과 들녘을 돌아다니며 격식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만난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빛을 잃었지만 역경을 딛고 하모니카 연주자로 거듭난 시각 장애인 전제덕씨, 반생을 술독에 빠져 폐인처럼 살며 절망의 극한까지 가보고 난 뒤 새출발을 한 이동포씨, 서울 강남에서 벼와 채소를 키우는 진짜 농사꾼 박성안씨 등 운명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 아름답다 못해 애틋하다. 가슴 한 구석을 촉촉하게 적시는 이야기가 많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저자는 “이 세상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책 한 권 엮지 못할 인생이란 없었으며, 어떻게 살아가든 가치없고 누추한 삶이란 없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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