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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함에서 힘찬 생명으로 '푸른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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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고집
이재무 지음, 천년의시작, 151쪽, 6000원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시인 이재무(46)씨는 “1980년대의 시대적 중압감 때문에 그동안 내 시가 진지하고 무거웠던 것 같다”고 자신의 시 세계를 평했었다. 때문에 시를 무거운 주제로 억압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대하고 싶었고, 그 결과 얻어진 시들이 후보작들에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씨는 또 외부에 대한 몸의 감각적인 반응을 순발력 있게 낚아채 시를 쓰는 편이라고 자신의 시작(詩作) 원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씨의 일곱번째 시집 『푸른 고집』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테니스 치는 여자는 물 속 유영하는 물고기 같다/그녀의 동작은 단순하지만 매우 율동적이다/물 오른 그녀의 종아리는 자작나무의 허리처럼 매끄럽다/땀 밴 등허리에 낙지발처럼 와서 안기는 햇발/통통, 바람 많이 든 공처럼 그녀의 종아리가 튀어 오르면/수음하는 소년처럼 나는 숨이 가쁘다 두 팔에 힘주어”(‘테니스 치는 여자’ 부분)

이씨는 ‘테니스 치는 여자’를 그동안의 무거움에서 가벼움과 관능으로 방향을 바꾼 대표적인 시로 꼽았다.

“입 꽉 다물고 있던 저수지 수문 열리자/갑갑증 일어 겨우내 발 동동 구르던/물방울, 그 개구쟁이 녀석들/파란 머리통 내밀어/와와, 고함치며 앞 다투어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관능은 찾아볼 수 없지만 ‘냇가에서’도 천진스러운 아이들의 놀이처럼 유쾌하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 실린 상당수의 시들은 90년대 들어 ‘일상’이 ‘역사’를 대체해 온 상황, 그런 흐름 속에서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려는 시인의 관심과 관련돼 있다. 굳이 가리자면 무거운 쪽이다.

‘문의 마을에 와서’나 ‘한강’에는 90년대 이후의 허탈감이 드러나 있다.

좌판에서 죽음의 나신들이 싼 값에 거래되는 상황에서 죽음은 그저 통속의 잡지처럼 속될 뿐이다(‘문의 마을에 와서’). 또 한강은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 범람을 모르고 제도의 모범생이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른다.

역사가 사라진 일상의 풍경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새문안교회 앞에는 측은한 눈빛의 절뚝거리는 늙은 개 한마리가 피해망상증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고(‘푸른 개’) 트럭 운전자들은 언제든 분노로 폭발할 수 있는 슬픔 몇 됫박씩 가슴에 지니고 질주한다(‘트럭’). 또 보라매 공원에서는 축축 늘어진 살덩이를 매달고 뛰는 중년들, 비루먹은 개처럼 꼬리를 내리고 어슬렁거리는 청년 실업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보라매 공원’).
시인은 순결한 초록의 생명력, 푸른 고집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보송보송한 얼굴 내밀고는/아장아장 허공을 걸어가는 저 철없는 유년의/푸른 고집”(‘봄날의 애가’부분)은 환하고 눈부시다. 물론 순결한 초록의 생은 생활의 골목과 언덕과 강물을 걷고 오르고 건너는 동안 상처와 무늬와 얼룩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눈부신 행진’에서 “푸른빛은 녹슬어 무거운 삶의 행보에/활력을 실어준다 얼마나 많은 수모와 좌절/나는 저 원색의 발랄함으로 달래 왔던가”라고 노래한다. “산개하는 푸른빛,/무명의 한 포기로 서서/무모한 열정이었으되 아름다운 소비였던 그날의,/활어의 시간 ”을 다시 걷고 싶다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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