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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치비자금 단칼 해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기원전 461년부터 30년, 페리클레스의 아테네는 서양문명의 꽃이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이 통념에 찬물을 끼얹었다. 창조적 천재가 만발했던 것은 사실이나 오늘 우리가 그때로 가서 잘 살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政爭에 거리두는 국민들

엄청난 전쟁 비용으로 고통받는 상태에서 권력의 아부꾼.선동가들이 비애국자 마녀사냥에 광분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승리는 결국 정치 실종.지도력 파산으로 몰락했다.

그 찬란한 꽃은 후세의 사가와 논객에게 두고 두고 화두가 됐으나 그 밝은 빛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중용(中庸)과 관용의 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고속 산업화와 민주화로 세상을 놀라게 한 한국도 밖에서 보는 모습과 그 내실이 다른 듯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정치를 탓하고 잘못된 교육을 불만의 이유로 든다.

그러나 고국의 현실이 그토록 절망적인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고국의 정치를 간단히 보면 3공에서 5공에 이르는 동안 군부의 실력자가 관료엘리트를 독려해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 국가주도 자본주의를 일궈냈다.

6공은 민주화로 가는 중대한 과도기였고, 대중정치가들이 민주화 세력을 결집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세워 이끌어 왔다.

김대중(DJ)대통령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지면서 대중정치 세력과 관료세력이 헤게모니 쟁탈전을 한판 벌이게 돼있다.

정부를 기능적으로 소상히 꿰고 있는 관료엘리트 그룹은 아스팔트 정치인들이 국가경영에 서투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 후자는 전자를 양지바른 곳과 온실 속에서 커온 우등생들이라 볼 것이다. 이 전열(戰列)에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각 진영의 중심은 지역구도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흔히 나타나는 일이므로 '망국적 지역감정' 은 지나친 표현이다. 종교.언어.인종이 분열과 반목을 일으키는 많은 나라에 비하면 지역감정은 문제라 할 것도 없다.

이제 공산주의.반공주의라는 유사(類似)종교마저 영험을 잃어 총중백골(塚中白骨)이 됐다.

여기에서 국민은 나날의 정쟁에서 거리를 두고 냉정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화학반응을 일으켜 서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세력들이 동서로 갈려 벌이는 감정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기건 국민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舊)기득권자와 신(新)기득권자의 싸움에 민초가 덩달아 흥분할 필요가 있는가.

문제는 다음 단계로 가는 수순인데 대통령이 보복정치의 사슬을 끊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것은 한국정치의 원죄인 정치자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모든 정치가들이 검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민주화 과정에서 세 차례 대선을 치렀는데 그 천문학적 선거자금이 어디서 나왔다는 말인가.

대가성 없는 돈이 세상에 있는가.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켜는 것은 도덕 이전의 생리현상이다.

국세청을 동원해 정적을 핍박하는 것은 루스벨트의 특기였다. 그러나 검은 돈 말고 달리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길이 미미한 한국에서 칼자루 잡은 쪽이 칼날 쥔 상대를 법대로 다스리면 이것은 상생(相生)은커녕 살생(殺生)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보복정치의 사슬 끊어야

이런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사면의 특권이 부여돼 있다. 대통령이 대사면을 내려 과거의 모든 정치자금비리를 용서하는 특별 조치를 내리기 바란다.

단칼에 해결해야 할 일을 미루면 이 문제는 죽음의 칼이 돼 결국 DJ를 치게 될 것이다.

이 일로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갔었고 이들을 모질게 몰아세웠던 YS에게로 불길이 다가오고 있다. 그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인물인가.

한국정치를 덮고 있는 비자금의 검은 안개는 미래지향적으로 꾸준히 줄여 가는 길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YS의 말대로 정치는 현실이고 비스마르크의 말대로 가능한 것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3金 청산은 한갓 구호일 뿐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도 수렴(垂簾)은 계속될 것이다. 엄정한 법의 집행보다 선거가 있게 하는 것이 더 중대하다고 판단한 YS가 현명하지 않았을까.

金相基(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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