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문건' 정체 밝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또 출처불명의 언론문건이 나돌고 있다.이번에 나온 문건은 이 정권 초기서부터 지난해 11월 중순까지 중앙일간지 10개의 논조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내용이다.

보고서 제목중‘국민의 정부와 언론전략의 기조’가 있고 분석과 대책 내용을 봐서도 여권내부 또는 친여의 어떤 조직에서 작성한 것이 아닌가 짐작될 수있다.

어느 정권이든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그 대응책을 논의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우리가 이 문건에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분석의 편향된 시각과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는 발상이다.우선 이 문건은 언론을 편가르기 한다.

이 문건이 분석하는 내용을 보면 경제정책이나 편중인사 또는 대북정책에 관한 비판도 모두 이 정권에 반대하고 야당을 훈수하는 기사인 것 처럼 분류하고 있다.논조를 친여(親與),반여(反與)또는 중립으로 나누지만 그 기준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다.자기네 편 아니면 야당편이다.이런 분류방식은 언론기능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이 문건은 초기의'위스키 앤 캐쉬'식 민원해결 방식이 실패했으므로 이를 지양하고 '정공법'으로 ‘언론 방어벽’을 세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이대로라면 이 정권이 초창기부터 언론장악과 회유에 나섰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그동안 언론자율성을 외친 것이 모두 기만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 된다.

정부는 지난번 언론문건사건이 터졌을 때도 일부 중간에 끼어든 몇사람만 조사하는 시늉을 벌이다 말았으며 정작 문제가 된 언론장악기도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어물쩍 넘어갔다.이번 문건에 대해서도 여권은 적당하게 넘어갈 심산인 모양이다.

민주당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부측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그러나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일일이 분석한 방식이나 내용으로 미뤄볼 때 여론분석에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이 상당기간 이같은 작업을 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여권이 특별히 운용하고 있는 집단인지,아니면 정부부처의 어느 기구인지,아니면 또 여당이나 그 외곽단체의 짓인지 가려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으로 언론을 회유하거나 통제해야겠다는 언론관이 여권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면 이야말로 반민주적인 국가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건은 최근 일부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정기간행물법개정안등 소위 언론개혁요구를 사회적 이슈로 삼아야 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여권은 이 문건이 어떤 수준의 것이며 어느 선까지 보고된 것인지 확실하게 밝혀야할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 책임도 가려야 한다.만약 또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시민단체의 요구에 맞춰 일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최근의 세무조사가 여권의 이른바'정공법'과 과연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