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처리장 세울 곳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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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천억원의 지원금이 걸린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공모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6월부터 일선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후보지 물색에 나섰으나 마감일(오는 28일)을 보름 앞둔 14일 현재 유치신청서를 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유치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제동을 거는 특이한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 안면도.굴업도 폐기물처리장 건설계획이 주민 반대로 무산된 뒤 10년 이상 표류해온 국가 과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 제동거는 자치단체〓정부가 ▶지진발생 우려가 없고▶2천t급 이상의 선박 접안이 가능한 점을 기준으로 발표한 처리장 후보지는 임해(臨海)지역 46곳이었다.

이중 현재까지 주민들이 유치 의사를 밝힌 곳은 강원도 양양군.충남 보령시.전남 영광군 등 세곳. 그러나 이들 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는 한결같이 반대하는 입장이다.

영광군의 경우 지난해 말 낙월면 송이도와 홍농읍 주민 3천여명이 유치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대다수 군민들이 반대한다" 며 의회 상정을 보류했다.

보령시는 오천면 원산도.삽시도 등 2개 섬 주민 5백26가구가 지난해 말 청원서를 내자 "시의 장기발전 전략이 '관광산업 진흥' 이기 때문에 일부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 며 반려했다.

양양군과 양양군의회도 지난달 16일 군수와 의장 명의로 지방 일간지에 광고를 내 "천혜의 청청지역에 폐기물 시설을 유치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유치를 추진 중인 주민들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 등이 유권자가 많은 반대지역의 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주민 갈등〓이에 따라 주민간에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양양군의 경우 현남.현북면 주민들과 땅 소유주들이 시설 유치를 주장하자 양양읍 등 나머지 지역 주민들은 '유치반대투쟁위원회' 를 결성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고기도 안잡혀 살기가 힘들다. 돈을 받아 마을을 바꿔보자" 는 입장이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은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양양읍 주민 朴모(64)씨는 "유치하려는 지역에 사는 친척들과 말도 안할 정도" 라고 말했다.

◇ 정부 입장〓지난해 말 현재 경북 월성.전남 영광 등 16기 원전에 임시 보관 중인 방사성폐기물은 5만7천91드럼. 정부는 총 저장용량이 9만9천9백드럼에 불과해 2008년께는 저장창고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5년 정도의 건설기간을 감안할 때 후보지 선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신청 지자체가 없을 경우 후보지를 강제 지정한 뒤 협의하는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럴 경우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불보듯 뻔해 안면도.굴업도의 재판이 우려되고 있다.

최준호.홍창업.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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