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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병풍' 수사 총선용이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해 2월 '반부패국민연대' 에게서 사회 지도층 인사 명단을 넘겨받아 수사에 나섰던 검.군 병역 비리 합동수사반이 1년 만에 해체됐다.

합수반은 그동안 비리 관련자 3백27명을 적발해 1백59명을 구속 기소하고 1백51명을 불구속 기소, 17명을 수배하는 한편 1백60명은 재신검을 통해 현역 입영토록 하는 실적을 올렸다.

또 전국적으로 연평균 7.58%나 됐던 신체 결함 병역 면제 비율을 지난해에는 3.1%로 낮추는 부수 효과를 거뒀다.

이밖에 병역 비리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해 지방 브로커 조직을 와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상당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병역 비리 수사는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 또하나의 실패작이다.

관련자 명단이 시민단체에 의해 청와대를 거쳐 검찰에 넘겨진 데다 대통령이 신당 창당 대회장에서 처음으로 수사 계획을 밝히는 등 착수 단계부터 석연치 않더니 결과도 '역시나' 로 끝나버렸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불신을 자초했다.

주범격인 박노항(朴魯恒)원사가 도피 중인 상태에서 총선 20여일을 앞두고 갑자기 총선 전에 정치인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공소시효.연령 초과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두 아들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몇 시간 만에 조사대상이라고 번복했다.

느닷없이 전.현직 국회의원과 사회 지도층 인사의 아들 66명에 대한 재신검 및 소환 조사를 총선 전에 끝내겠다고 밝혀 이른바 '야당 탄압' '병풍(兵風)' 시비와 함께 정치 쟁점화를 부른 것도 잘못이었다.

정치인 수사는 총선 후 겨우 한 명을 불구속하는 데 그쳤으니 결국 호들갑만 떤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수사는 검찰이 또다시 정치권에 휘둘린 꼴이 됐다.

병역 비리 관련자는 어느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국가 공권력의 상징적 존재인 검찰권이 언제까지 정치 권력에 이처럼 무기력하게 이용당해야 하는지 참으로 안쓰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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