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낀 중동] 下. 아랍권 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랍국가들은 예외 없이 이스라엘의 새 총리 아리엘 샤론과 악연이 있다. 샤론은 레바논에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다.

1982년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를 침공하고 기독교 민병대가 샤브라와 샤틸라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명을 학살했을 때 국방장관으로서 총괄지휘를 한 인물이 샤론이었다.

또 이스라엘은 67년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한 뒤 81년 그 지역을 자기들 영토로 병합했는데 샤론은 그때 강력한 병합 지지론을 폈다.

이 때문에 레바논과 시리아는 샤론이 승리하자 "이스라엘이 아랍권에 전쟁을 선포했다" 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라크는 샤론이 등장하자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기 위한 군대를 창설하겠다" 고 선언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있지만 역시 샤론이 달갑지 않다. 이집트는 73년 4차 중동전 때 기갑여단장이던 샤론이 2만7천명의 이스라엘 탱크사단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 영토 일부를 장악하는 바람에 다 이긴 전쟁을 놓쳤다.

요르단도 67년 3차 중동전 때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은 하나니까 팔레스타인 국가를 요르단에 세우라" 고 주장했던 샤론이 반가울 리 없다.

바라크와 정기적으로 만나 중동평화를 논의했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일단 샤론과 만날 계획이다. 그러나 온건파 무바라크도 샤론이 계속 강성으로 나오면 더 이상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다.

아랍권에선 강.온파를 불문하고 "샤론은 언제 무자비한 전쟁을 도발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걸 대비해야 한다" 고 우려한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면 그건 성전이 될 것"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팔레스타인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울 나라는 거의 없다. 과거 네차례의 중동전에서 모두 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랍국가들은 불도저라는 별명의 샤론이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산발적인 테러에 대해 대규모 보복을 할까봐 걱정한다.

그러면 명분 때문에라도 아랍권은 뭉쳐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은 "한번 싸워보자" 고 으르렁대면서도 속으로는 싸움이 일어날까봐 조마조마해하는 피곤한 밀고 당기기를 당분간 계속할 것 같다.

조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