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체제 위기 분석 '현대 일본의…'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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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후(戰後) 번영의 길에 올라선 뒤 줄곧 앞을 향해 달려왔던 일본 사회는 1990년대 들어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정권을 독점해 왔던 자민당은 군소정당의 연합체에 권력을 내어주고 기록적인 성장만을 고집했던 경제는 거듭 추락한다.

복잡하면서 정교한 폐쇄성 속에서도 경이적인 성장을 구가함으로써 서양사회에서는 일종의 불가사의로 받아들여졌던 일본의 사회.경제.정치체제가 90년대 들어 맞이하게 된 새로운 상황의 배경은 무엇일까. '위기' 로 치부되는 일본사회의 체제적 동요는 과연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비교정치학자로서 일본사회의 성장궤적을 추적해 온 펨펠의 『현대 일본의 체제 이행』은 이 문제를 들여다 보는 데 매우 유용한 돋보기다.

저자가 '일본 주식회사' 의 경영상태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시료는 다양하다.

50, 60년대의 일본 경제.정치.사회상황과 불안 요인의 등장에 따라 일본 사회가 동요하는 90년대의 상황, 동시대 스웨덴과 영국.미국.이탈리아의 그것 등이다.

비교정치학자로서 저자가 지니는 미덕이다.

책에 따르면 일본의 90년대 이전 상황은 관료에 의한 규제, 민족주의, 전전(戰前) 군사주의를 대체한 중상주의가 큰 흐름을 주도했다.

이는 자민당을 필두로 한 보수 정치인들의 성공, 정부가 경제성장에서 쌓은 업적, 이에 따른 일본 경제계의 성공으로 뒷받침된다.

특히 이 시기의 경제적 성공은 일본 기업의 노동과 경영간의 연계, 은행과 제조업간의 유대, 수출과 수입의 교묘한 균형, 다른 나라들과 대별되는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 등에 의해 이끌어지면서 결국 일본이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방정식' 에 의해 움직이는 관성을 얻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밀려들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다.

일본의 성공은 갑작스런 일당 지배의 종식, 경제거품의 붕괴, 사회적 불평등의 증대로 모습을 바꾼다.

'체제 이행' 의 필요성이 크고 광범위하게 대두된 것이다. 일본의 체제 이행에 관해 저자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세 개다.

우선 규제.민족주의.중상주의가 국제주의.규제완화 등과 결합한 혼합형이다.

다음으로는 지역구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정치인과 정당들이 어울려 경제적 의제의 해결을 미루는 70, 80년대의 이탈리아형.

마지막으로는 경제적 조건의 악화로 기존 정당 체계의 외부에서 격렬한 사회적 운동이 벌어진다는 것 등이다.

저자의 결론은 유보적이다. 하지만 "국제주의와 글로벌리즘의 도전은 본질적"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일본의 정치적 행위자들은 국제적 영역과 국가적 영역을 모두 민감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강점과 취약점을 조정해 갈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사회.정치.경제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자료제시는 일반인이 읽기에 다소 버거운 감이 있다. 하지만 일본사회가 맞이한 위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외국의 사례와 일본의 상황이 충분히 교직(交織)돼 있지 않은 점은 비교적 관점을 강조한 저자의 의도에 비춰볼 때 다소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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