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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신좌파 실험] 독일 슈뢰더총리 (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 '제3의 길' 이건 '신(新)중도(Die neue Mitte)' 건 유권자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뢰할 만한 각료다."

1998년 9월 헬무트 콜 총리의 16년 정권을 뒤엎고 집권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내각이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자 베를린의 타게스 슈피겔지는 이렇게 꼬집고 있다.

슈뢰더 내각은 1월초 안드레아 피셔 독일 보건장관과 카를 하인츠 풍케 농업장관이 광우병(BSE)파동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데 이어 70년대 좌파운동을 한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경찰관 폭행사진 공개파동, 위르겐 트리틴 환경장관의 적군파 연루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 개인이나 그의 내각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여전하다.

물론 98년 선거 당시 40.9%의 득표를 기록했던 사민당의 지지도가 최근 39.1%로 줄었지만 야당인 기민.기사당에 대한 지지도는 35.1%에서 33.1%로 더 많이 줄었다. 그러나 슈뢰더가 집권시 내건 '신 중도 노선' 에 대한 평가는 다소 빛을 잃고 있다.

이 노선의 핵심 내용은 개인의 창의성 강조, 지식사회에 조응하는 교육제도, 고용창출에 대한 우선 순위 부여, 기업의 활력을 유지하고 환경 친화적 발전을 위한 세제개혁 및 기술혁신, 결과보다는 기회의 형평성을 실현할 수 있는 일련의 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마디로 복지국가는 추구하되 전통적인 좌파가 주장하는 사회복지를 축소해서라도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우파와 좌파의 잡탕 정책이다.

슈뢰더는 "독일 경제에 해가 되는 그 어떤 정책도 용납할 수 없다" 면서 사회보장 및 경제발전의 효율과 형평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같은 슈뢰더의 중도좌파 노선은 정책추진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고 민간 부문의 조세 부담이 증가했으며 나아가서 고령화 사회의 복지정책을 수정할 필요성이 제기되며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슈뢰더의 중도노선은 전통 좌파가 주장하는 '사회적 정의' 라는 개념을 분배의 형평이 아니라 '기회의 형평성' 이라며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내 당내에서도 전통 좌파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 경제가 10년 만의 최대 호황국면이라 내년 총선거에서 슈뢰더의 재집권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 최대 야당인 기민당이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을 완전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국민도 슈뢰더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슈뢰더는 정통 좌파의 이념실종 주장에 대해 자신은 공약으로 내걸었던 좌파에 기반을 둔 개혁을 착착 추진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7월 중산층에 유리하게 세제개혁을 단행했고, 지난달 26일엔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민에게 유리하게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또 지난달 29일 군기지의 대대적인 폐쇄를 발표했고, 극우정당인 독일국민당(NPD) 해산 소원을 이번 주에 낼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슈뢰더의 머리 속에는 '신 중도' 라는 말이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독일 국민은 그가 추구하는 이념이 '제3의 길' 이건 '신 중도' 건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의 복지와 정치안정에 그가 기여한다면 계속 지지할 것" 이라고 말한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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