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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신군부가 협의 무시” 12·12직후 강한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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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2면

1979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12·12 사태를 일으킨 직후 미국 행정부는 한국 신군부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한국의 민간정부 수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사실이 공식 외교문서로 확인됐다. 하지만 미국은 12·12 사태 발생 후 보름 정도가 지나자 신군부를 사실상 묵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1979년 문서를 비롯해 모두 1270여 권(18만여쪽)의 외교문서를 22일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건과 12·12 사태, 고상문씨 납북사건, 재일동포 김희로씨 사건, 주한미군 철수, 일본 홋카이도 근해 한국어선 조업 문제, 한덕수 조총련 의장의 방북 등을 둘러싸고 당시 긴박했던 한국 정부의 대응동향과 외교비화가 상세히 수록돼 있다.

12·12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신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 리처드 홀브룩 국무부 차관보와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와 신군부 측에 강한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정부는 특히 신군부가 작전통제권 행사와 관련한 한·미 간 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 백악관과 미 국방부의 강력한 불만을 전달하고 앞으로 한국 민간정부의 수립을 전폭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홀브룩 차관보는 쿠데타 발생 직후인 13일 김용식 당시 주미대사를 불러 “지금 상황이라면 미국에서 한국에 불리한 여론이 크게 대두될 것”이라며 “한국군 체제가 너무 급격하게 변동돼 군 지휘 체계가 동요될 수 있는 만큼 김일성이 군사적인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같은 날 서울에서 최규하 대통령, 14일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만난데 이어 19일 박동진 외무장관을 면담, “한국군이 미국 측과의 협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대와 사단병력을 자의로 이동해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를 지극히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 군부가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이러한 불만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미 합참의장을 거쳐 백악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이라며 “미국 정부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민간 정부와 상대할 것이며 민간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hundred percent support)”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당시 외무부는 김용식 대사에게 훈령을 내려 ▶(정승화 육참총장 체포와 관련한 군내 동요) 사태가 잘 수습됐으며 ▶정치발전 체계를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을 홀브룩 차관보에 전달하도록 했고, 그해 12월 28일 다시 박 장관을 면담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대해 크게 누그러진 입장을 나타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군부 지도자들에 대해 그들을 배척하거나 경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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