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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신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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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상황이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이 가톨릭·개신교를 믿는 비(非)무슬림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신을 지칭할 때 ‘알라’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07년의 말레이시아 정부 지침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내무부는 말레이시아어(語)로 신을 ‘알라’라고 옮기는 모든 비(非)무슬림 출판물을 금지했다.

고등법원의 결정은 종교 간 갈등을 낳았다. 1월부터 교회·성당 11곳, 시크교 사원, 이슬람 사원 2곳 등의 예배처가 방화, 기물 훼손의 표적이 됐다. 돼지머리를 모스크에, 소머리를 힌두교 사원에 던져놓으며 다른 종교를 자극하는 일도 있었다. 말레이시아 인구 2800만 명 중 60%가 이슬람, 9%가 가톨릭·개신교를 믿는다. 250만 그리스도교인은 주로 중국·인도계다. 국민 중 다수를 점하는 말레이계 무슬림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주님’을 뜻하는 ‘투한(Tuhan)’ 대신 굳이 ‘알라’를 사용하겠다는 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알라’라는 말을 공유해 무슬림을 헷갈리게 한 다음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말레이시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알라’는 사실 이슬람에 국한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다. 이슬람 성립 이전에도 사용됐다. 오늘날에도 레바논·시리아 등지에 사는 1200만 아랍계 그리스도교인들은 신을 ‘알라’라고 부른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아람어를 사용한 예수는 신에게 기도할 때 ‘아알라(Aalah)’라는 단어를 썼다.

‘알라’ 사용권 분쟁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종교·문화적으로 축복받은 나라라는 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가톨릭에서 ‘천주(天主)’ 대신 ‘하느님’을 선호하게 됐을 때 “왜 우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을 가톨릭에서 쓰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말 쿠란이 ‘알라’를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사회적 논란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신 호칭 논란의 완전한 무풍지대는 아니다. 1991년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가사를 착각해 “하나님이 보우하사”라고 애국가를 부른 가수가 야유를 받았다. 1977년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 교단이 초교파 운동 차원에서 공동번역성서(共同<7FFB>譯聖書)를 내놨으나 신의 이름이 ‘하느님’으로 돼 있어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는 신을 ‘하느님’으로 부르는 가톨릭·성공회·정교회와 ‘하나님’으로 부르는 개신교로 나뉘어 있는 형국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기독교 갈등의 핵심은 ‘알라’가 보통명사인가 아니면 고유명사인가 하는 문제다. 언어의 문제가 국론분열까지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종교 간 평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도 방심해선 안 된다. ‘하느님’ vs ‘하나님’이라는 한국판 신 호칭 문제에 해법은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지영 기자가 중앙SUNDAY 2009년 2월 21일자에 쓴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수 인순이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게 물었다.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가 도대체 뭡니까.” 한 음반 안에서 ‘하느님’ ’하나님’ 두 명칭을 다 사용했다는 것을 고백하며 질문한 것이다. 추기경이 대답했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나도 하나님이라고 그러는 것 같은데.”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