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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새로운 야심 "육·해·공 무적엔진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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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롤스로이스의 대형 여객기용 간판 엔진인 "트렌트" 시리즈. 보잉 747 점보제트기 등에 장착된다.

#1 지난 11일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200km쯤 떨어진 브리스톨의 롤스로이스 공장. 전투기나 군함 등에 들어가는 군수용 엔진 생산공장의 정문 앞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엔진 제품 시찰을 위해 한국군 간부 일행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사는 향후 큰 손님이 될지 모르는 외국 군인들에게 깍듯한 예우를 차렸다.

#2 이틀 뒤인 13일 런던에서 두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한 더비의 롤스로이스 여객기 엔진 공장. 때마침 대형 입찰 수주 사실을 발표하는 날이라 공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일본의 전일항공(ANA)이 2008년 도입하는 미국 보잉사의 차세대 중형 여객기 B 7E7용 엔진 입찰에서 승리한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이 입찰에서 벅찬 상대인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제치고 ANA에 첨단 엔진(트렌트 1000) 110대를 공급하게 됐다.

로버트 너털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일본 민항사들은 30여년간 GE 엔진만 고집했다. 이번 계약은 그래서 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롤스로이스가 창사 100주년을 맞아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세계 1위 도전을 위한 공격경영에 나선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세계 곳곳의 경쟁 입찰에서 GE와 맞붙어 잇따라 승전보를 올리는가 하면, 한국.중국.일본 등 떠오르는 동아시아 시장을 파고드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핵심역량에 집중=롤스로이스는 최고급 호화 승용차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독일 폴크스바겐(뒤에 BMW에 넘김)에 자동차 사업이 넘어간 지 10년 가까이 됐는데도 아직 자동차 회사로 아는 사람이 적지않다.

자동차 판매를 하던 찰스 롤스와 전동차를 처음 만든 헨리 로이스가 공동창업한 롤스로이스는 최고의 자동차 엔진 기술을 응용.발전시켜 오늘날 세계적인 가스 터빈 엔진 전문업체로 변신했다. 민간.방위 우주항공과 해양.에너지 등 크게 네 분야에서 세계 동력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사물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이 회사의 경영철학이다. 존 로즈 대표는 "우리의 업(業)은 동력 추진 장치"라고 정의했다.

가장 큰 사업은 여객기 엔진이다. 지난해 매출 110억달러의 절반 가량을 민간 항공기용 엔진의 판매 및 서비스에서 거뒀다. 엔진개발은 수천억원의 비용과 수년의 세월이 드는 큰 작업이다. 한번 개발하면 모델의 수명이 수십년 간다. 그래서 민항기 엔진 기술을 전투기나 수송기에도 응용해 큰 시장을 개척했다.

롤스로이스는 태생부터 글로벌 기업이었다. 1904년 회사 설립과 함께 파리.뉴욕 등지에 해외지사를 두기 시작해 오늘날 50개국에서 3만5000여명이 일한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영국 밖에서 거둔다.

롤스로이스는 제조업체이자 종합컨설팅 서비스 업체다. 이른바 '사후 시장'(After market) 때문이다. 항공기.배 등 동체에 걸맞은 엔진을 설계하고 만들어 납품한 뒤에도 유지보수.부품 교체까지 책임지는 컨설팅 서비스가 전체 매출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만년 2위 탈피 노력=사업군이 많은 GE와 달리 엔진 외길을 걸은 덕분에 1위 GE와 격차를 크게 좁히고 있다. 대형 민항기와 헬기 엔진, 수직 이착륙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1위에 올랐다. 앨런 프럼 한국지사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 항공 관련 산업이 크게 위축됐지만 우리는 연간 10억달러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건재하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50대 민간 항공사 중 41곳의 500여대 항공기에, 또 50개국의 160여개 육.해.공군 전투기에도 롤스로이스의 엔진이 수천대 깔려있다.

한국과는 40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삼성테크윈과 제휴해 에어버스 A380기에 장착될 트렌트 900 엔진의 부품을 독점 공급하는 한편 한국군이 채택한 T56 및 모델250 엔진의 정비를 맡았다.

런던.인디애나폴리스=홍승일 기자

*** 존 로즈 대표

"엔진 종합컨설팅 애프터마켓 강화"

존 로즈(52.사진) 대표는 롤스로이스 100년 역사에서 비(非)엔지니어 출신으로 처음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인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시카고 퍼스턴 뱅크 등에서 은행가의 꿈을 키우다 1984년 이 회사에 합류했다. 경영혁신에 뛰어난 수완을 보여 96년 회장에 올랐다.

▶롤스로이스의 경쟁력 비결과 향후 비전은.

"우리는 가스터빈에만 한 세기 동안 공들였다. 민항기 등 4대 사업 부문의 제품 및 서비스 경쟁력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워낙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투자여서 여객기 엔진 하나를 개발하면 전투기나 선박 등에도 응용하려고 애쓴다. 여객기 엔진이 최대 사업이지만 미국 국방부가 우리의 최대 고객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엔진 종합 컨설팅 같은 애프터 마켓에 좀더 주력해 부가가치를 높일 생각이다.

▶글로벌 투자전략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임금수준이나 원자재 값 상승 등은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무게로 따져 승용차를 1kg만큼 팔면 햄버거보다 못한 평균 5파운드(1만원)를 버는데 그치지만, 엔진 1kg을 팔면 90파운드(18만원)를 번다. 해외로 생산기지를 많이 옮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은.

-삼성과의 제휴처럼 성공적인 협력사업이 많다. 일본의 민항기 엔진 수주를 계기로 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를 씻는 노력이 필요하진 않나.

-(웃으며)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는 데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은 바보짓이다. BMW 역시 훌륭한 기업이고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으로 고급차를 잘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와 혼동해도 별로 손해가 아니라고 본다.

런던=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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