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산책] 분당 '푸른교실' 김미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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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분당은 중산층 도시잖아요. 학원에 못가는 아이들의 소외감이 그만큼 크죠.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주택가에 있는 '푸른교실' . 실직 가정 자녀들을 모아 무료로 과외를 하는 곳이다.

도로쪽으로 향해있는 출입문을 열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자, 도서관에 가면 뭘 할 수 있을까□" "선생님, 저요! 저요!" "선생님, 쟤는 아까 대답했어요. "

바깥 날씨가 워낙 추워 입김이 호호 나올 정도지만 스무평 크기의 공간은 수업 열기로 뜨겁다.

10여명의 아이들 얼굴에서 실직 가정의 어두움을 찾아볼 수 없다.

1999년 2월 이곳에 '푸른교실' 을 연 주인공은 김미라(30.여.분당구수내3동)씨. "보습학원 강사를 했는데 성적 지상주의에 염증이 났어요. 점수가 아니라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죠. "

그러던 참에 분당의 실직 가정 이야기를 듣게됐다.

"분당 주민들은 모두 중산층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임대 아파트 지역을 중심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더군? "

집 평수에 따라 친구들이 나뉘고 학원 3개는 기본일 정도이니 이들 가정 아이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보듬기에 나섰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아버지의 실직에 이어 대형 할인매장에서 일하던 어머니 마저 일자리를 잃은 李모(12.초등5년)군은 "그동안 친구들이 학원 얘기를 꺼낼 때마다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지금은 자랑스럽게 얘기 자리에 낀다" 고 말했다.

'푸른교실' 에 다니면서 성적도 많이 올랐다.

이때문에 친구들이 어느 학원에 다니느냐고 물어볼 정도라며 으쓱한다.

김씨의 바람은 이곳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이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얼마전 미용사 자격증을 딴 한 학생 어머니가 아이를 맡아줘서 미용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며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

또 하나 초등 과정만 있는 '푸른교실' 을 중학교 과정 까지 확대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가끔 바자회를 열어 운영비를 마련하지만 집세와 교재비를 대기에도 빠듯하고 선생님도 두명 뿐이어서 과목을 늘리는 일을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실직 이후 부모가 이혼,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최진미(12.초등6년)양은 "선생님 때문에 수학에 재미를 붙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 걱정" 이라며 울먹였다.

한편 분당구청측은 이달부터 '푸른교실' 의 두 선생님을 공공근로자로 인정, 매일 2만5천원씩 지급하고 있다. 문의 031-718-0563.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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