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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21> 세브란스병원 마취과 통증클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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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목과 5, 6번째 목뼈의 퇴행성 변화

실시간으로 환자의 목뼈와 신경을 촬영하는 방사선 기기. [최정동 기자]

오후 1시, 박씨를 진찰한 윤 교수는 “컴퓨터 사용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목뼈(경추)의 퇴행성 변화가 의심된다”며 “일단 목뼈 사진을 찍어보자”고 말했다.

잠시 후, 윤 교수는 박씨에게 목뼈 사진을 보여주며 현재의 상태를 설명한다.

“고개를 숙인 채 오랜 시간 있다 보면 ‘C자’형 모양을 해야 할 목뼈가 일자로 똑바로 배치되는 ‘일자목 증후군’이 생겼습니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목과 주변 근육이 뭉치면서 지금처럼 결리고 아프지만, 오랜 기간 방치하면 목뼈 퇴행이 촉진되면서 목 디스크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미 5번, 6번 목뼈에 퇴행성 변화가 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치료를 받나요?”(박씨)

“통증을 유발하는 척추신경, 좀 더 자세히 말하면 5, 6번 척수에서 나오는 신경의 중간 가닥을 국소마취제를 주사해 차단할 겁니다. 주사할 위치를 정확하게 잡기 위해 시술 도중엔 방사선 촬영을 통해 척추 주변의 구조물을 확인하게 됩니다.”(윤 교수)

#통증 경로 끊어주고 혈액 순환 도와

오후 2시, 시술방엔 방사선 촬영이 진행될 것에 대비해 모든 의료진은 방사선을 차단해 줄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다. 박씨가 침대에 눕자 마취과 전임의가 왼쪽 목과 어깨 주변을 넓게 베타딘(소독약)으로 닦은 뒤 시술 부위만 남긴 채 방포를 덮는다. 박씨의 머리 위론 C자 모양의 X선 장비가 위치하고, 발쪽엔 화면으로 목뼈 주변의 구조물이 실시간 나타난다.

치료를 위한 준비가 끝나자 수술용 장갑을 낀 윤 교수가 박씨 왼쪽에 자리를 잡더니 긴 철사 막대를 시술 부위 전·후·좌·우에 대면서 X선 화면을 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기자)

“이 막대는 바늘이 정확한 위치에 들어가는지 확인하기 위한 표지판 같은 거예요.”(윤 교수)

위치를 확인한 윤 교수가 국소마취를 하면서 박씨에게 “따끔합니다”란 말을 건넨다. 긴장한 박씨는 말이 없다.

마취 후 일반 주사바늘보다 굵은 신경차단용 바늘을 박씨 목에 3~4㎝ 깊이로 찔렀다.

“아파요?”(윤 교수)

“아뇨, 괜찮아요.”(박씨)

환자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윤 교수는 두 차례에 걸쳐 5, 6번 경추 신경의 뒷가지 안쪽가지 신경을 차단하면서 국소 마취제(리도케인)를 각각 2㏄씩 주입했다. 시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신경을 차단하면 신경이 분포된 부위에 마비가 오진 않나요?”(기자)

“신경 차단의 목적은 불필요한 통증이 전달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데 있습니다. 통증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셈이에요. 혈액순환도 좋아지고요. 물론 차단한 신경의 주변 조직이 마비되지도 않습니다. 이 방법으로 통증이 없어지지 않으면 고열의 고주파로 신경절 일부를 파괴하는 시술을 받아야 합니다.”(윤 교수)

윤영미 교수(오른쪽)가 박씨에게 실시간 X-선 화면을 보면서 통증제거를 위한 신경차단술을 실시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시술 후 통증 없이 귀가하다

오후 2시20분, 박씨가 환자용 침대에 누웠다.

“지금 어떠세요?”(기자)

“괜찮은데요?”(박씨)

“그런데 왜 누워 있나요?”(기자)

“선생님이 30분만 쉬었다 가라고 해서요.”(웃음)

30분이 지난 뒤 박씨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귀가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정동 기자


통증 치료란
아픔 일으키는 부분 찾아내 교감신경 정상화

통증은 급성 통증과 6개월 이상 지속하는 만성 통증으로 구분한다.

통증 역시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통증도 자연히 사라진다. 문제는 뚜렷한 원인을 찾기 힘든 통증, 원인을 알아도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다. 이땐 통증 자체를 없애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줘야 한다. 통증클리닉은 이런 환자가 주된 치료 대상이다.

가장 빈발하는 질환은 근막통증 증후군. 흔히 ‘담에 걸렸다’ ‘근육이 근육이 뭉쳤다’고 말하는 병이다.

통증은 유발 부위가 있고, 그곳을 누르면 다른 부위에서도 통증이 나타난다. 어깨·목·등·허리 등에 빈발한다. 지속적인 긴장과 스트레스·운동부족· 나쁜 자세 등이 원인이다.

장시간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사람 중에 어깨와 목·머리까지 아플 때 의심할 수 있다. 원인은 상체가 구부정한 ‘거북 목’자세를 오래 유지하기 때문이다. 척추의 윗부분이 스트레스를 받아 뒷목의 근육과 인대가 손상되고, 목·허리·어깨·팔 등 근육·골격·관절에 통증을 느낀다.

발병 초기에는 찜질·운동·마사지·물리치료로 통증이 경감되지만 오래되면 치료해도 그때뿐이고, 또다시 통증이 재발한다. 이럴 때 통증 유발점을 찾아 주사하거나 때론 교감신경을 찾아 주사해 통증 유발 부위의 섬유화를 끊어줘야 한다. 그래야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통증을 유발하는 교감신경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 시술 후엔 바른 자세, 50분 작업 후 10분 휴식,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인 스트레칭과 운동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이 밖에 난치성 통증 질환인 섬유근통 증후군이나 암성 통증도 주사 또는 고주파 열응고술, 신경파괴제를 통해 진통제 용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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