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채봉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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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 정채봉 '엄마'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를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다.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 사나이가 어느날 운주사(雲舟寺) 와불(臥佛)을 찾아가서 신을 벗고, 양말도 벗고 커다란 와불 팔을 베고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이 세상 처음으로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이 사나이가 바로 정채봉 자기 아닐까? 늘 불러도 처음 같은 말 "엄마!" 하얀 눈이 오는 이 겨울 그가 눈송이를 따라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를 부르러.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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