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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읽기]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 '아줌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연말 연초 교수들의 모임에서 MBC-TV의 드라마 '아줌마' 가 화제에 올랐다.

주인공 아줌마를 에워싼 주요 인물들의 직업이 대부분 교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그의 애인, 그리고 친오빠의 직업이 모두 교수로 설정되어 있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에서부터 "재미있던데 뭐" 에 이르기까지 의견도 다양했다.

'심하다' 고 보는 시각은 여기 나오는 교수들이 철저하게 가면으로 포장된 속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삼숙의 남편이 어떤 경로로 교수가 되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자격 미달은 아니었지만 떳떳하게 교수가 되지는 않았다. 돈을 써서 교수사회에 진입한 후 그것이 들통나자 양심선언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같지만 개연성 있는 허구다.

'재미있다' 는 건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증명하고 있다. '가을동화' 땐 맥을 못추더니 '눈꽃' 이 휘날리면서부터는 쌩쌩 날고 있다. 머지않아 궁예의 성까지 함락시킬 기세다.

출연자들의 연기는 이미 몰입의 단계를 뛰어넘은 듯하다. 특히 연기생활 30년이 가까운 강석우(남편 장진구 역)의 경우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야말로 제대로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리얼리티를 담아내고 있다.

'아줌마' 에서 줍게 되는 두 단어는 주체성과 이중성이다.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여자여서?

못 배워서?)무시당하면서도 헤헤거리며 웃고 산다면 그건 근성있는 노예에 다름아니다.

극중에서 아줌마가 어느날 갑자기 대오각성해 주체성을 찾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남편의 무시와 홀대가 쌓이고 쌓인 게 한계에 도달해 폭발한 것이다. 그녀는 지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다.

좋은 드라마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주변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아줌마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에 점수를 매겨 보라. 오삼숙(원미경)을 중심으로 볼 때 남편은 마음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에게 잣대는 있지만 줏대는 없다.

그가 가진 일관성은 이기심의 통로를 지날 때만 튼튼하다. 난형난제의 위선자지만 삼숙의 오빠(김병세)는 거기에 근엄함을 덧입혔기 때문에 더 구역질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올케(견미리)는 자신의 분노조차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절제(승화)할 정도의 '지성인' 이다.

남편 애인(심혜진)은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잘 짜인 연극을 꾸밀 정도의 탁월한 연출가다.

"오늘 작전 성공이야" 라고 그들이 잔을 부딪칠 때 시청자는 그들의 얼굴에 먹물을 확 끼얹고 싶었을 것이다. 확실히 위선은 '진악(眞惡)' 보다 나쁘다.

페미니즘 혹은 휴머니즘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단어들의 뜻을 몰라도 여성 아니 인간을 존중하면 그는 페미니스트이자 휴머니스트다. 드라마 '아줌마' 에서 불륜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다.

거기엔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녹아 있다. 대사도 연기도 심지어 그에 대한 해석도 '과잉' 은 불편하고 피곤한데 '아줌마' 에는 그것들을 가라앉히는 묘한 힘이 있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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