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잘못된 '한성' 지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느 다른 한곳을 여행할 때 우선 찾게 되는 것은 지도다.

특히 경제발전에 힘입어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에 갈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것 같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사람에게 의식주는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자는 행위처럼 사람에게 절대적인 것은 없다.

옛말에도 "먹는 일은 백성의 하늘(食爲民之天)"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의식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필수적인 것들이다.

현대문명은 인류에게 풍부한 물질생활을 가져다 줬다. 아울러 사람들의 생활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쪽으로, 아무데서나 눕고 대강 먹는 생활양식에서 좀 더 질서가 잡힌 화폐경제의 사회로 바뀌었다.

일정한 장소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재화를 교환하는 것은 일상생활이 됐다. 이같은 이유로 누가 낯선 지역을 여행할 때 반드시 자신을 이끌어주는 지도를 찾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의 생활에 지침이 돼 주는 지도야말로 그곳의 경제.문화 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지도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내가 서울 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경험 때문이다.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누구나 그렇듯 나도 먼저 서울 지도를 찾았다. 나를 안내해준 친구는 우선 서울 지하철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먼저 건네줬다.

이어 그는 1999년 4월 출판된 중국어 지도 '漢城(서울)' 을 내게 구해다 줬다.

이 지도에는 지하철역과 노선도.관광지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중국어와 일어.영어 등이 병기돼 있었다.

내심 나는 '서울이 역시 세계적인 도시여서 이런 지도까지 마련돼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중국어로 된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 넘쳐나는 오기(誤記)와 잘못된 표현들 때문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 여행, 참신한 ○○항공으로-' 라는 광고문구다. 지도에선 '참신' 이라는 단어를 '斬新' 으로 표기해 놓고 있었다. 이 가운데 '斬' 이라는 글자는 '참' 으로 써야 옳다.

잘못 표기한 '斬' 이라는 글자는 고대 형벌 가운데 수레로 사람의 육신을 찢는 형벌로, 말하자면 극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직 그 항공사의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이같이 황당한 글자를 마주치는 중국인들의 표정은 어떨까. 더구나 문자의 뜻이나 사물의 형태를 보고 불길한 것은 가급적 피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인데 말이다.

또 한 가지. '△△호텔-손님을 집에 돌아온 것같이 모시겠습니다' 는 문구다.

여기에서 중국어 표현은 '令貴客賓至如歸' 인데, 원문대로 해석하자면 '손님으로 하여금 (다른)손님을 제 집에 돌아온 것 같이 편하게 모시도록 하겠다' 는 뜻이다.

좀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아는 중국인이 이 문구를 읽을 경우 박장대소할 일이다.

막 호텔에 도착한 손님으로 하여금 다른 손님을 모시게 한다니 도대체 무슨 표현이 이럴까. 이런 표현을 접하고 나서도 중국인들이 참을성 있게 이 호텔을 찾으리라고 믿는 것일까. 역시 다른 한 호텔 광고문구다.

'서울 ◇◇ 호텔-우아한 분위기에서 국내외 미식가들을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고 하면서 '분위기' 를 뜻하는 '情調' 를 '情凋' 라고 표기했다.

꽃잎이 시들고 사물이 쇠락한다는 뜻의 '凋' 를 과감하게 쓴 이유에 대해 중국인들은 한참 골머리를 앓아야 할 문구다.

지도상의 오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딱 떨어지지 않는 표현에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한참 뜸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 수두룩하다.

이런 지적은 작은 부분을 침소봉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도상의 광고문구를 두고 너무 공을 들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은 이제 국제적인 도시다.

더구나 한국은 12억 인구의 중국을 상대로 관광유치 활동을 열심히 펴고 있다.

서울을 찾는 중국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지도의 오기를 그냥 놓아두는 것은 어쨌든 창피한 일일 것 같다.

지도라는 게 현지의 경제.문화 수준을 가늠케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양두안즈(楊端志)<中 산둥대 교수.성균관대 교환교수>

◇ 필자약력

▶1949년 7월생, 51세, 베이징대 중문과 졸업

▶산둥대 중문과 교수

▶現 중국 훈고학회 이사

▶성균관대 중어중문과 교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