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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틴틴] 5.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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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앨범
실비아 다이네르트 외 글, 울리케 볼얀 그림
엄혜숙 옮김,사계절, 48쪽, 9800원

유진과 유진
이금이 지음, 푸른책들, 288쪽, 8500원

운하의 소년
니에리 르냉 지음, 조현실 옮김, 비룡소, 82쪽, 6000원

1990년대초 어린시절 성폭력의 피해자가 어른이 돼 가해자를 공격했던 ‘김부남 사건’이나 ‘김보은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례는 많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늘고 있는 요즘 성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치료하고 또 성폭력을 예방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다.

성폭력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불쾌한 일이 생기면 싫다고 표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아동성폭력상담소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내 보이며 억지로 보게 하거나 싫은 일을 강요당할 경우 어린이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싫은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내가 싫다고 표현했을 때 어른들이 화를 내거나 친구가 내게서 멀어질까봐 두려운 마음에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 앨범』은 성폭력 예방이나 치료용으로 좋은 책이다. 의인화한 표현으로 아이들에게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폭력은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만 알려준다.

생쥐네 엄마도 두 딸 단비와 소라에게 늘 무서운 고양이를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고양이하고는 말도 하지 말고 사탕도 받지 말고 곧장 집으로 달려와야 한다”고 들은 단비와 소라는 고양이가 나타나자 경계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인형이나 달콤한 말로 구슬리며 단비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삼촌에게는 아무런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단비는 삼촌이 꼭 껴안는 것도, 꼬리를 만지라고 요구 할 때도 싫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삼촌은 단비가 아끼는 가족앨범이 찢어지고 말 거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또 단비는 엄마가 알면 무척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단비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단비를 꼭 안아주고 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처럼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아이들에게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도록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실제로 상처를 받은 아이에게는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등 부정적인 생각을 담고 있지 않도록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 똑같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도 당시 어른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차이는『유진과 유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아픈 상처를 준 사건을 경험한 후 부모가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큰 유진’과는 달리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았던 ‘작은 유진’은 어린 시절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 이렇듯 상처는 꼭 치료해야 한다. 그대로 두면 흉터가 크게 남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 성폭력으로 입은 상처의 치료제는 가까운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이다. 성폭력 피해를 감추려 할수록 아이는 더 큰 상처를 키워간다.

유치원 원장은 큰 유진과 작은 유진에게 나쁜 행동을 했고, 작은 유진은 그런 불쾌감을 인형의 목을 자르거나 다리를 찢는 것으로 표현했다. 다른 아이들은 원장의 협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불쾌한 감정을 표현했던 작은 유진은 부모가 그 감정을 차단하는 바람에 그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다.

혹 아이들이 성폭력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를 읽기 싫어하거나 어느 부분에서 격한 감정을 표현한다면 자세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단비처럼 마음의 상처가 격한 감정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작은 유진처럼 아끼던 장난감을 함부로 대하거나 거친 행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폭력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 흉터처럼 영원히 남을 수도 있다. 큰 유진이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처가 떠올라 불쾌감에 진저리를 치는 것처럼 어차피 휴유증은 남는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누구의 잘못이라는 판단보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앙금처럼 남는 감정도 중요하다.

『운하의 소녀』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사라가 자신을 그리고 싶어하는 미술 선생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낯선 느낌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다. 자신도 그 감정을 즐겼기 때문에 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라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누구에게든 말하기 두렵다. 사춘기 호기심에서 비롯된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러나 아동 성폭력은 범죄이고 어떤 경우든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어른이 잘못이다.

김경선(하제 독서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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