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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 볼만한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영화가 연말 극장가를 수놓고 있다.바쁜 일상을 이유로 평소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부모들이라면 눈여겨 볼 만하다.

오랜 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미 개봉한 애니메이션 ‘치킨 런’‘포켓몬스터’에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몰리고 있으며,동화 같은 가족영화 ‘그린치’‘102 달마시안’의 반응도 좋다.

또 30일엔 철학적 사색이 묻어나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키리쿠와 마녀’ 두 편이 동시에 개봉한다.어른들이 보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작품들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는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어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여지는 미야자키 하야오(59) 감독의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국내 극장에서 처음 상영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우시카' 는 맨 밑바닥 애니메이터로 출발해 줄곧 스태프로 일하다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78)으로 단번에 명감독 반열에 오른 미야자키의 이름값을 재확인하게 한 명작. 일본 개봉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일본 영화(실사영화 포함) 사상 손꼽히는 수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야자키의 첫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자 '천공의 성 라퓨타' (86), '원령공주' (97)로 이어지는 후속작들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영화다.

이런 외적인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작품 자체만을 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강력하다.

미야자키가 만화주간지 '아니메주' 에 82년부터 연재했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 나우시카' 는 현대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독을 뿜는 균류가 서식하는 공간인 '부해' 로부터 아직 오염되지 않은 계곡의 여기저기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바람 계곡의 공주 나우시카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줄로만 알았던 부해가 실은 지구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만, 군사국 토르메키아의 황녀 크샤나는 부해와 여기에서 살고 있는 거대곤충 '오무' 를 태워버려 새로운 인간문명을 세우려는 음모를 꾸민다.

얽히고 설킨 이야기 구조,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스케일 속에 숨겨진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이기성과 현대 문명의 폭력성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특히 오무의 새끼를 미끼로 오무떼를 유인하는 장면에선 인간의 잔혹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으레 등장하는 선.악 대결을 피하고 등장인물 사이의 상대적 갈등을 부각한다든가 예전 애니메이션에선 보기 어려웠던 비장함과 웅장함, 미야자키 작품 특성을 잘 보여주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 감독 자신이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음을 보여주는 공동체 마을 풍경 등이 주목할 만하다.

또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하늘과 비행기에 대한 동경을 늘 갖고 있는 미야자키가 하늘 공간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환경이란 묵중한 주제를 애니메이션이란 가벼운 매체로 훌륭하게 소화해낸 미야자키 감독의 저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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