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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5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55. 일본 집쥐 조사

일본의 대학병원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괴질의 원인이 실험실 쥐에서 옮겨 간 서울바이러스 때문임을 밝혀낸 필자는 일본 집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분명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집쥐에서도 서울바이러스가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81년 필자는 오사카시립의대 의용동물학과 다카다교수에게 일본 집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니나다를까 다섯 차례에 걸쳐 다카다교수가 보낸 2백11마리의 집쥐를 모두 조사한 결과 24%가 감염돼 있었다.

그러자 다카다교수는 내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앞으로 자신의 연구가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됨은 물론 쥐를 잡다 병에 걸린 채집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제기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집쥐의 채집은 이카리란 용역회사에서 맡았다. 순진한 들쥐와 달리 영악한 집쥐는 전문가가 아니면 산 채로 잡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알고 봤더니 혈청검사상 양성반응을 보인 집쥐는 모두 하네다공항 근처 도쿄(東京)만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잡은 쥐였다.

당시 그 곳에선 '꿈의 섬' 이란 칭호 아래 일본 정부가 의욕적으로 신도시 건설공사를 시행하던 중이었다.

내가 사실대로 발표하면 일본언론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것이 확실했다. 나는 다카다교수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1983년 오사카에서 열린 학회에서 필자는 이 사실을 공개했다. 필자는 학회에서 2백11마리의 집쥐를 조사한 결과 24%가 서울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으며 이중 8마리는 폐 속에 바이러스가 있었고, 이들 바이러스가 45일간이나 집쥐의 폐에서 배출되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본 학계가 들끊었음은 물론이다.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여 내가 가는 곳마다 신문기자들이 따라 다녔다.

학회가 열리던 4월5일 밤 나는 심한 복통을 앓았다. 처음엔 격무에 시달려 그런 줄 알았는데 꼼짝 않고 휴식을 취해도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필자는 오사카시립의대병원을 찾았다. 일본 의사들은 환자의 통증에 매우 엄격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아파도 참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진통제를 맞게 될 경우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취지에서 필자도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학회에서 내가 해야할 강의를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결국 진통제 주사도 없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택시를 타고 학회장에 가서 강의를 했다.

가까스로 강연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와 이틀을 입원했지만 그때까지 진단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배에 가스가 차고 통증이 심했다. 처음엔 맹장염을 의심했지만 열이 없었고 혈액검사상 백혈구 수치도 정상이었다.

게다가 오른쪽 하복부를 누를 때 아파야 할 맹장염의 징표도 없었다. 학회가 끝나면 일본실험동물협회에서 나와 집사람을 위해 준비한 5일 동안의 관광코스가 있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싶었다.

그러나 너무 아팠고 일본의사도 미덥지 않아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어찌나 아팠는지 김포공항에 내려서도 바로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 했다.

당시 나는 고려대의대 학장이었으므로 고려대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필자의 선.후배였던 당대의 명의들이 모두 모였다.

현재 서울중앙병원장이자 당시 고려대구로병원장이던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 민병철박사와 대통령주치의와 서울대병원장을 지냈던 고 한용철박사 등이 나를 찾았다.

필자는 코에 튜브를 꽂은 채 드러누워 있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엑스선촬영이나 내시경에선 모두 정상으로 나오지 않는가.

의사들도 서로 의견이 달랐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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