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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밴쿠버] 육상으로 치면 100m 우승…‘체격 열세’ 체력으로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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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태범은 16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벌어진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 2차 시기 합계 69초82로 일본의 나가시마 게이치로(69초98)를 0.16초 차로 제치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이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참가했던 1948년 생모리츠(스위스) 겨울올림픽 이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모태범이 처음이다. 1936년 카르미슈(독일)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 김정연이 일장기를 달고 참가한 시점부터 따지면 74년 만의 쾌거다.

그만큼 극적이었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기에 해외 언론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로이터)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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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단거리 금메달에 비견될 쾌거=스피드 스케이팅 500m는 육상의 100m와 자주 비교된다. 그만큼 순발력과 파워가 필요한 종목이기에 동양인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치부돼 왔다. 모태범의 체격은 1m77㎝, 72㎏. 남자 5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캐나다의 제레미 워더스푼(34)보다 12㎝가 작다. 하지만 모태범은 각고의 훈련으로 체력을 길렀고, 타고난 순발력에 스케이팅 기술이 어우러지면서 체격의 격차를 넘어섰다.

모태범의 금메달은 동양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 수영에서 박태환 선수가 그 벽을 넘었고, 이틀 전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서 이승훈의 은메달이 다시 입증했다. 과거 어느 올림픽에서도 동양인이 스피드 스케이팅 5000m 이상 장거리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지만 이승훈은 은메달로 ‘역사’를 뒤집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체격의 격차를 체력과 기술로 극복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이제는 체격이 아니라 체력이다. 우리 기초종목 선수들의 영양상태도 좋아졌고 체격도 커졌다. 동서양 스포츠과학 정보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과학적인 트레이닝법이 도입돼 기술이 필요한 스포츠라면 더 이상 동서양의 신체조건 차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강하고, 세고, 자주하는 훈련방법을 중시했다면 최근에는 훈련강도와 빈도·형태 등에서 훈련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록 경기에서 동서양의 격차는 없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한을 풀다=모태범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62년의 한도 풀었다. 1948년 생모리츠 올림픽부터 꾸준히 두드려온 금메달의 문이 2010년 밴쿠버에서 열린 것이다. 88년 캘거리대회 남자 500m에 출전한 배기태가 5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고, 김윤만이 92년 알베르빌대회 남자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겨울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안겼다. 이후 침묵하던 메달 소식은 2006년 토리노대회 남자 500m에서 이강석(22)이 동메달을 따내며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태범의 금메달 소식에 해외 언론은 찬사를 쏟아냈다. 로이터는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질주였다”고 썼고, AP는 “한국이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도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타전했다.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쇼트트랙 경기장보다 규모가 훨씬 큰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도 한국 선수가 위세를 떨쳤다”는 설명도 붙였다. AFP통신은 “모태범의 생각이 벌써 1000m와 1500m를 향하고 있다”고 썼다.

국내 빙상 전문가들은 ‘모태범·이승훈 효과’가 나타나길 벌써 기대하고 있다. 박태환·김연아의 성공에 자극받아 수영과 피겨 기대주들이 대거 등장한 것처럼 빙상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

성봉주 박사는 “모태범이 서양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또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환해 메달을 따냈다. 어린이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허진우 기자


역대 빙속 스타 주요 수상 내역

■ 이영하  1976년 세계 주니어선수권 종합 우승

■ 배기태  1987년 네덜란드 세계선수권 500m 1위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 500m 5위

■ 김윤만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1000m 은메달

■ 제갈성렬  1997년 세계선수권 1000m 3위

■ 이규혁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1000m 4위
2009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종합 우승

■ 이강석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500m 동메달

■ 모태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500m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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