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쌍둥이, 출생했던 병원서 ‘백의 천사’로 다시 태어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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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6일 인천 길병원에 첫 출근한 네 쌍둥이 간호사가 병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셋째 솔, 둘째 설, 첫째 슬, 막내 밀.[길병원 제공]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함께 일하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16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가천의대 길병원에 생김새가 비슷한 새내기 간호사 4명이 첫 출근했다. 병원 직원들은 ‘돌아온 네 쌍둥이’에게 새 가운을 건네준 뒤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날 간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황슬·설·솔·밀(21) 자매는 21년 전 1989년 1월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국내 두 번째의 일란성 여아 네 쌍둥이였다.

1989년 1월 갓 태어난 네 자매와 함께한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길병원 제공]

출산 당시 아버지 황영천(54)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해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어머니 이봉심(54)씨는 출산이 가까워 오자 친정이 있는 인천의 한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그러나 출산을 3주 앞두고 양수가 터져 인큐베이터가 있는 길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길여(현 가천길재단 회장) 길병원 원장은 1시간여의 제왕절개 수술 끝에 네 쌍둥이를 무사히 분만시켰다.

그러나 가족들은 입원비에 인큐베이터 비용 때문에 걱정이 컸다. 사정을 알게 된 이 회장은 “병원비는 한 푼도 받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이 회장은 이씨가 퇴원할 때 병실을 찾아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대줄 테니 꼭 연락하라”고 약속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서로가 까맣게 잊고 살았다. 네 자매는 아버지가 일하던 삼척을 거쳐 인천과 경기도 용인 등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4자매 모두 반장을 도맡아 하고 공부도 잘했다. 장래 희망은 똑같이 ‘백의의 천사’였다. 맏이 황슬양은 “우리가 태어나던 때의 일을 자주 듣고 자라서인지 남을 도울 수 있는 간호사로 꿈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네 쌍둥이를 기억해 냈다.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119화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을 연재하던 2006년 9월 낡은 사진첩을 정리하다 18년 전의 약속을 떠올린 것이다.

수소문 끝에 용인에 살고 있는 네 자매의 가족을 찾아냈다. 맏이 슬과 막내 밀은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둘째 설, 셋째 솔은 강릉의 영동대 간호학과에 수시합격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적지 않은 등록금 때문에 입학이 불투명했다. 광부 일을 그만 둔 이후 아버지의 수입이 일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4명의 등록금·입학금으로 2300만원을 전달했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뽑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네 자매는 올해 졸업할 때까지 3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았다.

쌍둥이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10일 간호사 국가고시에 나란히 합격했다. 약속대로 4명이 나란히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됐다. 수원·강릉에서 떨어져 공부하던 쌍둥이들은 병원 인근의 인천 구월동에 집을 얻어 함께 살게 됐다.

맏이 황슬양은 “회장님이 저희들과의 약속을 지켰듯이 우리 자매들도 아프고 힘든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가슴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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