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충기 교수가 설계한 집 ‘동다’. 이 집에는 산을 마주하는 열린 마당과 벽으로 둘러싸인 닫힌 마당이 있다. 열린 마당에 놓인 데크는 한옥의 대청마루를 연상케 한다. [김경빈 기자]
그는 무엇보다 나이 마흔에 직업을 바꿨다. 공대를 나와 전기기술자로 살아오다가 차(茶) 사업가로 변신했다. “땅과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차 사업은 그렇게 뛰어든 분야였다. 그리고 직접 차 농사를 지었다. 또 인사동에 다원을 차리고, 15년째 차와 다기를 팔고 있다. 그는 사업 기반을 다지고 쉰이 넘어 ‘내 집’을 짓기로 했다. 7년 전 서울 역삼동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온 이유다.
그가 마음에 그린 집은 꾸밈이 없는 집이었다. 식구들, 혹은 지인들이 찾아오면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는 방을 갖추고 노모와 아들과 딸, 다섯 가족이 화목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어난 집이 ‘동다’. 132㎡규모(1·2층 면적)로 제법 규모가 큰 데도 찾은 사람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기름기를 쫙 뺀 듯’ 장식을 거부하고 필요한 것만 적당히 갖춘 집의 구조와 살림살이 때문이다.
다실 창으로 내다본 닫힌 마당. 최근 눈이 내린 날 ‘동다’의 집주인이 직접 찍었다. (사진 위)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하씨. 부부는 서울로 통근하는 게 번거롭지만 “사시사철 풍광이 좋은 이 집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하씨는 “집에 중요한 것은 장식이 아니라 내 삶과 더불어 끊임없이 길러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건축가인 이 교수를 만났다는 그는 “조선시대 ‘소쇄원’의 공간연구를 한 이 교수를 믿었다”고 말했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정원. 바위와 연못, 석축과 담장 등 조경물의 절묘한 조화로 유명하다. 하씨는 마루데크에 올려진 나지막한 담장 한 토막도 자랑했다. 마당 옆으로 보이는 옆집을 시각적으로 막아주는 ‘가벽’이다. 손님이 보기엔 영문을 모를 담장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그는 “운치를 더해주는 벽”이라며 즐거워했다. “소쇄원 8경 중 하나가 담장이라고 합디다. 돌로 쌓은 담장이 서로 통하면서도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고 하죠.”
◆순응과 파격=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자유로운 집을 원하는 다인(茶人)의 취향을 살리기가 어디 쉬울까. 하지만 건축가는 한 술 더 떴다. 집터 서쪽으로 묘지가 보여 집을 옆으로 옮길까 고민하는 건축주에게 “묘지 때문에 이 터는 너무 좋습니다”라고 했다. 주인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고 한다. 건축가는 이 집에 전통과 현대를 연결했다. 대청마루 같은 야외 데크는 한옥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대문·마당으로 이어지는 단독주택 입구의 고정관념을 깨고 길에선 주차장과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30대에 집 두 채를 지어보았다는 하씨는 “젊은 사람들에게 꼭 집을 지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집을 지어보면 일의 시작과 끝을 알게 돼 세상을 보는 스케일이 달라지고, 각 과정을 컨트롤하는 법도 배운다는 뜻이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