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4년 만의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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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설가 이청준(65)씨가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문이당)를 펴냈다. 2000년 '목수의 집'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13일 이씨를 만났다. 올해는 그가 등단(1965년)한 지 햇수로 40년째다. 소설집에는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단편소설 '꽃 지고 강물 흘러' 등 모두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씨의 체험에 많은 부분을 빚진, 말하자면 '삶을 베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오마니!'는 어머니의 생애를 테마로 영화를 찍는 방화계의 노장 Y감독이 억장이 콱 무너질 만한 그림거리를 찾지 못해 영화 원작자인 소설가 '나' 등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다. Y감독이 이씨와 여러편의 영화를 함께 만든 임권택 감독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들꽃 씨앗 하나'는 하루 반나절 만에 대처에서 고향 마을까지 왕복 600리 길을 다녀와야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1950년대 고학 중학생의 얘기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지만 예기치 못했던 사건들이 겹치면서 결국 진학에 필요한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못한다. 이씨는 "중.고교 시절 학교가 있는 광주에서 고향인 전남 장흥군까지는 8시간씩 걸리는 길이었다"고 밝혔다. 체험담이기에 소설은 한층 더 절절히 다가온다.

표제작 '꽃 지고 강물 흘러'는 말년의 어머니에게 갖은 구박을 다한 미운 형수를 시동생인 내가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나는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 형수의 뒷모습에서 죽은 어머니를 본다. 이씨는 "'꽃 지고 강물 흘러'는 장편 '축제'와 단편 '눈길'의 후편이자 어머니 사후의 후일담"이라고 말했다. "'축제'에서 어머니와 형수의 불화를 드러냈고 '눈길'에서 말로 다 못할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그렸다면 '꽃 지고…'에서는 김현 식(式)으로 말한다면 죽은 어머니까지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생전 김현은 이씨의 연작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를 두고 "(소설에)어머니 팔아먹더니 이제는 죽은 아버지까지 팔아먹는다"고 했다고 한다. 이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셨어도 형수가 어머니가 돼, 삶의 정서는 마치 강처럼 계속 흘러가는 것이라는 점을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형수와의 화해, 그로 인한 깨달음'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이씨에게 해결하기 쉽지 않던 숙제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소설은 일종의 씻김질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신준봉,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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