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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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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은 인류에게 큰 빛이 내려온 날, '하나님' 이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는 아기 예수의 형상으로 나타난 날이다.

어떻게 하면 예수 탄생을 제대로 봉축할 수 있을까. 그가 가르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연말을 맞이해 고난한 이웃을 직간접으로 돕는 이들이 많다.

도시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있는 자선냄비에 보시하는 이, 전화만 걸면 자동적으로 2천원씩 보시가 되는 편리한 제도를 활용하는 이, '희망 2001' 을 비롯한 갖가지 제목의 이웃돕기 운동에 참여하는 이, 교도소나 각종 복지시설을 직접 찾는 이, 집수리.간병봉사와 김치 담가주기 운동에 동참하는 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품에 껴안고 귀여워해 줄 때 사랑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는 주는 쪽이고 손자는 받는 쪽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들의 체험담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손자를 품고 있는 그 포즈 자체에서 행복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주면서 받는 것이다. 석가도 증여자와 수혜자,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주고받는데 양쪽이 똑같이 이익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예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는 일 그 자체에 자족감 또는 행복감이 담겨 있다고 가르칠 것이다.

한데 말이다. 예수나 석가 또는 지극한 인류애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이 들면 다행이지만, 스스로 어려운 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지도 않고, 또 돕는 일 그 자체에서 아무런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의 논리는 당연히 어려운 이를 도와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가슴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흉내내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남을 돕기는커녕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라는 생각, 어려운 이들은 전생과 금생에 복을 짓지 않아 자업자득으로 그렇게 됐다는 생각, 어설피 돕는 것은 거지 근성이나 의타심리를 더 키워 줄 염려가 있다는 생각 등을 떨쳐버리고, 남을 돕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흉내일지라도 돕다 보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원숭이가 선사의 수도처 주변에 살았다. 선사가 참선할 때, 앞으로 꼬꾸라질 듯이 조는 모습이 원숭이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보였다.

선사가 죽비를 들고 조는 모습을 흉내내 자기도 나무 꼬챙이를 붙잡고 머리를 꾸벅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숭이는 실수로 나무에 코를 찔려 죽고 말았다.

그런데 참선하는 모습을 흉내 낸 인연으로 원숭이는 다음 생에 진짜 참선을 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너훈아' '패튀김' '주용필' 은 각기 유명 인기 스타를 모방해 생계를 꾸리는 밤무대 가수들이다.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나훈아의 굴려 꺾기, 패티김의 길게 빼기, 조용필의 한을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단다.

저 모방자들은 이런 경험담을 전한다.

테이프를 보고 들으면서 흉내를 내다 보면 상대의 숨결이나 감정까지 느껴지고, 마침내 상대가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 내 자신이 어렵더라도, 기분이 나지 않더라도 이웃돕기 흉내를 내보자. 그러다 보면 예수와 석가의 호흡과 마음까지도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침내 그들처럼 인류구제의 큰 원도 가지게 될 날이 있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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