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98>‘짤순이’ K부장이 7자를 그리는 비결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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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16면

50대 초반의 중견기업 부장 K는 구력이 20년을 넘는 베테랑 골퍼다. 드라이브샷 거리는 200야드 내외. 그런데도 심심찮게 ‘7’자를 그린다. 동료들 사이에서 ‘짤순이’란 놀림을 당하면서도 K가 로 핸디캡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K의 연습 방법부터 살펴보자. 그는 일주일에 적어도 네 번 이상 연습장을 찾는다. 수은주가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에도, 남들이 몸을 움츠리는 한겨울에도 그는 연습을 빼먹지 않는다. 아이언샷과 드라이버, 우드를 연마하는 것까지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K는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쇼트게임 연습에 할애한다. 목표 지점을 미리 정해놓은 뒤 공을 굴려서 갖다 붙이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공을 띄워서 목표 지점에 붙이는 훈련을 한다. 그래선지 K는 어프로치의 대가로 불린다. 핀에서 60야드 이내의 어프로치는 거의 백발백중(?)이라고 봐야 한다. 이 거리에서 어프로치를 하면 어김없이 공은 홀에서 2~3m 거리에 쩍쩍 달라 붙는다.

K가 70대 타수를 기록하는 또 다른 비결은 퍼팅이다. 그는 2m 이내 거리에선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다. 빠르고 까다로운 그린에서도 2m 이내의 퍼팅 성공률이 70%를 넘는다. 특히 버디 기회에선 그의 퍼팅 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5~6m 정도의 거리에서 버디 기회를 맞으면 반드시 퍼트를 우겨 넣는다. “고수라면 버디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는 게 K의 지론이다.

한 시간 정도 샷을 가다듬은 뒤 K는 다시 10분가량 트러블샷 연습을 한다. 골프공이 나무 밑이나 덤불 속에 떨어질 것을 대비해 클럽을 거꾸로 잡고 공을 쳐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클럽을 잡고 공을 쳐내는 연습도 빠뜨리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은 ‘과연 저런 샷까지 연습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지만 K는 남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루틴을 지킨다.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은 실전에서도 빛을 발한다. 필자는 라운드 도중 K가 클럽을 거꾸로 쥐고 공을 뒤로 쳐내서 50야드 이상 날려보내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K는 자기 관리에도 철저하다. 가능하면 과음을 피하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팔굽혀펴기와 스트레칭은 기본이고 물구나무서기도 빼먹지 않는다.
K는 골프와 관련한 일은 모두 기록해두는 메모광이기도 하다. K는 이제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1200여 차례의 라운드 경험을 모두 기록해 놨다고 털어놓았다. 라운드한 날짜와 날씨, 동반자의 이름과 함께 스코어를 일일이 적어놨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날의 퍼팅 횟수도 함께 적는다. 그래서인지 K는 골프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첫 홀 ‘올 보기’나 웬만한 거리의 기브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골프를 잘하기 위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모든 아마추어 골퍼들이 K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K는 “연습을 게을리하면서도 좋은 스코어가 나오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골프는 인생과 닮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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