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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 짧았던 알렉산더, 운명 바꾸려 칼로 손금 늘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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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20면

알렉산더 대왕은 결정적 순간마다 점성술사를 찾았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대의 궁정화가 샤를 르 브렁이 그린 ‘알렉산더 바빌론성 입성’의 일부. [중앙포토]

“인간이 리스크를 지배할 수 있었기에 ‘신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미래(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전까지 미래는 예언자나 점쟁이들의 영역이었다.”
미국의 금융학자이면서 투자가였던 고(故) 피터 번스타인이 생전에 즐겨 했던 말이다. 그는 확률과 통계, 게임이론 등의 기법으로 인간이 미래를 체계적으로 따져 리스크(불확실성)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를 ‘현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명의 순간에 운을 믿었던 영웅들

그의 말대로라면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도박의 승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17세기 이후를 현대라고 봐야 한다. 이후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법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전까지 모든 리스크는 예언자나 점쟁이들의 몫이었다. 그들이 ‘리스크 관리자’였던 셈이다. 왕·장군·참모, 심지어 현자까지 그들의 고객이었다. 그들 가운데 왕들은 손에 쥔 것이 많았으니 잃을 것도 많았다. 결단의 순간은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전쟁시기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건 전쟁에서 미래를 알고 싶어 했다.

페르시아 전쟁으로 점성술 전래
고대 알렉산더 대왕은 운명의 순간에 점성술로 리스크를 관리했다. 그는 페르시아 정복에 나서기 전에 점쟁이를 불러 자신의 손금을 보여줬다. 자신이 세계를 정복할 인물인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점쟁이가 세계를 정복하기에는 손금이 짧다고 하자 알렉산더는 칼을 꺼내 손금을 늘렸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은 새로운 문명과의 조우이기도 했다. 그가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영역에 진입한 직후 바빌로니아 점성술을 알게 됐다. 보자마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와 운명을 건 대결을 벌이기에 앞서 바빌론 점성술사를 불러 점을 쳤다. 알렉산더가 점성술사에게 무엇을 물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역사가들은 가우가멜라 전투 등 운명을 건 한판승부를 앞두고 알렉산더가 날씨와 지형, 운세 등을 물어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점성술은 알렉산더 제국의 네트워크를 타고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지역으로 퍼져 현재에 이르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빌려 자기 말의 설득력을 높이려고 했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아가 물어보니 나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므로 이 신탁을 이상하게 여겼다…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누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시절 신탁은 무당의 푸닥거리와 비슷했다. 델포이 신탁소는 땅 밑에서 습하고 독한 냄새의 김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사람이 이 김을 쐬면 제정신을 잃고 몽롱한 상태에 빠지곤 했다. 신탁소 지킴이인 무녀는 바로 이 김을 쐬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데, 당시 사람들은 바로 이 말을 아폴론의 신탁이라고 여겼다.

제갈량 점괘 무시한 유비, 전장서 방통 잃어
점괘·운세 등은 고대나 중세 참모나 장군의 필수과목이었다. 중국 제갈량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 점괘를 뽑아봤다. 주군인 유비가 서촉을 치러 떠날 때 제갈공명은 “점괘가 좋지 않으니 복병을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결과는 그의 점괘대로 유비는 복병의 공격을 받아 또 다른 참모 방통을 잃었다.

이순신 장군도 전투에 앞서 곧잘 점괘를 뽑아 든 것으로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임진왜란 5년째인 1596년 1월 10일 장군은 “맑았으나 서풍이 세게 불었다. 적이 다시 나올지 안 나올지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쳐보니 ‘임금을 보고 모두 기뻐하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좋은 괘였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해 9월 충무공은 거제도 장문포를 공격하기에 앞서 점괘를 뽑아 보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는 괘가 나왔다. 실제로 조선 수군이 공격하자 왜적은 험준한 산 정상에 진을 치고 나오지 않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충무공은 전투뿐 아니라 아들이나 자신의 후견자인 유성룡의 앞날을 놓고도 점괘를 뽑아보곤 했다.

점쟁이의 말은 인재를 선택할 때 결정적인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가 사냥을 떠나기에 앞서 점을 쳤다. 점쟁이는 “오늘 (잡힐) 것은 사슴도 범도 아니요, 은을 무너뜨릴 자입니다”라고 말했다. 주 무왕의 아버지가 그날 얻은 것은 강태공으로 널리 알려진 태공망이다. 이 인물은 나중에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쓰러뜨리는 데 최고의 공을 세운다.

'고르비'는 물병자리, 새 아이디어 좋아해
고(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시절 부인 낸시에게 “조앤은 뭐라고 해?”라고 묻곤 했다. 조앤은 낸시의 점성술사인 조앤 퀴글리다. 퀴글리는 1992년 『조앤은 뭐라고 해?』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는 ‘로널드와 낸시 레이건을 위한 백악관 점성술사로서 7년’이다. 그의 책에 따르면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에 앞서 퀴글리에게 조언(?)을 구했다. 퀴글리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을 반신반의하는 레이건에게 “고르바초프는 물병자리의 수성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한다”고 속삭였다. 그가 개혁·개방을 진정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관계는 아주 원만했다.

또 레이건의 일정은 퀴글리 말에 따라 갑자기 바뀌곤 했다. 그가 “그곳에는 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면 백악관 참모들은 새로운 일정을 짜기 바빴다고 한다.최고 엘리트들도 점성술에 의존한 1980년대 월가에서는 포트폴리오 투자이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확률과 통계 이론을 바탕으로 리스크와 수익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포트폴리오를 짜서 운용하는 것이다. 미 국방부 펜타곤은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날아오는 소련의 핵미사일을 레이저 등으로 우주에서 막는다는 계획이다. 레이건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레이저와 탄도탄요격미사일 등을 들먹이며 스타워즈를 미국인들에게 설명하곤 했다. 그 순간만은 너무나 과학적인 대통령인 양 했다.

레이건의 점성술 문제는 80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 상대 진영은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지사 시절부터 점쟁이에게 의지했다고 공격했다. 레이건 진영은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진 딕슨이라는 점쟁이 말을 즐겨 들은 것으로 드러났다. 딕슨은 선거 유세 중 레이건에게 “‘당신은 대통령이 될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레이건은 과학의 시대에 가장 주술적인 리스크 관리를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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